■ 진안의 숨은 보배 천춘진씨

처음 만난 천춘진씨는 낡은 작업복에 방금 전까지도 일을 하고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흙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본사에 급하게 들리게 되어 작업복 차림으로 왔다며 몹시 미안해 하던 그를 필자는 상냥(?)하고 친절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그 후 며칠 뒤 그에 대한 좋은 느낌 그대로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눠 보았다.천춘진씨는 부귀면이 고향이며, 올해 34살의 젊은 농사꾼으로 1년전 귀농했다고 한다.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서 4남3녀 중 막내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는 그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어릴 때 작두에 손가락 하나가 잘려서 군대는 면제가 됐어요.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좋은 기회를 얻어 일본에 갈 수 있었지요.”그의 말을 듣고 다시 본 천춘진씨 손은 손가락 두 마디가 잘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손가락이 잘려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있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손가락 때문에 군대가 면제되어 일본 유학의 길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동경 농대를 다닐 때는 연구생으로 입학을 했기 때문에 연구를 주로 했어요. 그렇다 보니 실질적인 농사 경험이 없어 처음 귀농했을 때 참 힘들었습니다.”현재 그는 애농(愛農)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베이비 샐러드라는 특수채소를 하면서 연구하는 농민으로 생활하고 있다.부귀에 400평, 연장리에 1,000평의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으며 아직은 서서히 개척하는 시작 단계이지만 앞으로 브랜드화 시키면 소득면에서도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하는 그에게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젊은 농민의 패기를 엿 볼 수 있었다.결코 짧지 않은 12년의 일본 생활과 연구원이라는 탄탄한 직장을 버리고 그가 귀농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일본에서 같이 연구하던 동료가 있었어요. 유능한 동료였는데 안타깝게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또 한명의 여자 선배도 유방암으로 죽었구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생각했지요.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 본질을 추구하자구요. 그리고 대학 선배의 소개로 만난 김진홍 목사님의 권유도 있었고요.”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모두들 고향을 떠나 도시로만 나가는 요즘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을 찾아 온 천춘진씨. 그는 농업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진정한 농민이 될 자격이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한편 7년의 짝사랑과 결혼에 골인해 어린 세 자녀를 둔 그는 아이들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자연농업을 말했다.“저는 아이들은 어릴 때 농촌에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보다 자연에서 모진 어려움을 겪고 자라는 식물이 더 생명력이 강한 것을 비교해 볼 때도 볼 수 있듯이 아이들을 과보호 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커 갔으면 합니다.” 그의 농촌 사랑, 그야말로 애농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오랜시간 많은 대화를 통해 진안의 숨은 보배를 발견해 참 즐거웠던 시간을 마치면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꿈에 대해 물어봤다.“앞으로 강단에 서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그냥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기 보다는 제가 농사 지으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실천농업에 대해 직접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국가적으로 큰일을 못 하더라도 농업에 대한 가치와 실천을 학생들에게 깨닫게 해주며, 연구자와 농민의 중간역할도 담당하고 싶다고 말하는 천춘진씨는 고향 진안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했다.올 봄, 직원을 채용해 본격적인 농사에 들어간다는 그에게서 벌써부터 값진 결실의 땀냄새가 맡아졌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