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통일기행 연재(2)

▲ 개성공단 현장학습에 참여한 학생들 모습
지난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우리군 초등학생 6학년 220여 명과 인솔교사 등이 북한 개성공단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흔치 않은 이 경험을 우리신문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인솔교사와 참가 학생들의 기행문을 연재한다. 이번호에는 첫 번째 순서로 인솔교사로 참가한 송풍초등학교 윤일호 교사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개성공단은 총 1단계 공사가 진행되어 백만 평이라고 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다. 마치 한국에 있는 한 공단을 들어다 놓은 것처럼 한국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북녘이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전기는 남녘에서 끌어다 쓴다고 한다.

약 35,000여 명의 북녘 근로자가 일을 한다고 하는데 안내원 말로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달마다 버는 돈이 56달러인데 그중에 30퍼센트는 당에 바치고 자신들이 받는 돈은 고작 40달러 정도인데 그 돈이면 북녘 사람들 중에 최 상위 계층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5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니 북녘의 경제 사정을 알만하다 싶다. 앞으로도 2단계 사업에는 이백오십만 평, 3단계 사업에는 삼백오십만 평이 개발된다고 한다. 차질 없이 계획대로 개발이 된다면 개성은 아마도 통일의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개성시내를 벗어나 한참을 가다 안내원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인삼밭이다. 출발하기 전 진안 군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인삼밭이다. 진안에서는 그렇게 흔한 인삼인데 그 인삼이 개성에 있다고 생각하니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산에는 벌목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나무가 별로 없다. 마을마다 지키고 있는 공산당원 모습도 이채롭다. 무엇보다 차장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 모습은 참 순해 보이고 착해 보여 좋은 느낌이다. 개성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중학교가 끝날 때쯤(참고로 개성은 초등학생이 12시, 중학생이 12시 반에 하교한다고 한다. 말은 안 했지만 학교에서 급식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 우리가 탄 차가 학교 앞을 지났다.

아이들도 우리도 마냥 신기한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맑고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데 우리가 손을 흔들면 그에 맞추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내원 말이 북녘 아이들은 하교하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악기나 운동, 그림 따위의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또 비록 경제 상황은 좋지 않지만 처지야 어떻든 대학까지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하니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진안지역이야 덜 하지만 도시만 해도 사교육 광풍이 몰아쳐 아이들 적성은 고사하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입시 위주의 경쟁에 내몰린 우리 현실과도 너무 비교되었다.
일곱 시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오는데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뜬금없이 정말 재미없는 옛이야기 하나 해야겠다.
한 형제가 살았다. 본디 우의가 좋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이간질로 사이가 나빠졌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지내던 세월이 한참. 그런데 형은 살만했지만 동생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형이 먼저 손을 내밀어 동생을 보듬고 달래며 동생의 어려운 가정 형편도 도와가면서 그 동안 멀어졌던 마음을 가까이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노력으로 서로 집도 오가며 멀어졌던 마음도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웃 사람들이 형에게 너무 동생에게 퍼주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니 그렇지 않다고 말해놓고서 형도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퍼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전보다 도움도 줄이고 왕래도 조금씩 줄였다. 동생도 눈치가 있지. '형이 달라졌구나.'하고 생각하니 서로가 그 동안 쌓았던 믿음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번 금이 간 믿음은 점점 갈라지면서 서로 다투는 일도 잦아지고 점점 멀어져갔다.

너무 뻔한 얘기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 땐 동생보다 나이 많은 형이, 형편이 나은 쪽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예의라고 본다. 손해니, 퍼주기니 이것저것 따져가며 가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해답은 없다. 되짚어보면 우리 사회에 '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통일은 무슨 통일~'하며 오히려 통일을 점점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서독과 동독은 통일되기 전부터 교류하고 나누었지만 통일되고 이십 년이 지나서도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번 통일 기행이 단순히 '우리는 잘 살고 북녘은 못 사니 우린 정말 행복한 거야.'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기보단 북녘의 사는 모습과 삶을 이해하고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번 통일 기행이 추진되기까지 애쓰신 여러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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