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면 능금리 상능마을 최선희 씨

▲ 최선희씨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개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동향면 능금리 상능마을에 사는 최선희(49세)씨를 찾아갔다. 이 길로 가도 농가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한참을 올라갔다. 자동차도 없다는데 이런 길을 매일 걸어다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떤 사람인지 더욱 궁금했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드디어 아담한 벽돌집 한 채가 보였다. 여섯 마리의 개들에 둘려 쌓인 최선희씨가 반갑게 반겼다. 마당 한편에는 땔감용으로 보이는 통나무와 잔가지들이 쌓여 있었고 텃밭에는 서리맞은 잡풀들만이 이곳이 밭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초겨울 농가 마당 그대로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바깥 벽면 그대로 내벽도 도배 없이 벽돌이 드러나 있었다. 적벽돌이 주는 차가운 느낌과는 달리 집안은 의외로 따뜻했다.

거실은 연탄보일러이고 두 개의 방은 구들방이라고 말하는 최선희씨는 "전 기계 못잡아요. 그래서 톱으로 잔가지만 해오고 통나무는 아시는 분이 기계톱으로 마련해 주지요. 보답으로 제가 재배한 농산물을 드리고요."라고 말하며 골동품 가게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닳고 닳아 이제는 좀 쉬었으면 하는 표정의 양은주전자에 총명탕을 끊여 내놨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2002년에 귀농한 최선희씨는 가족들의 반대로 처음 1년간은 귀농했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구 반대하던 부모 형제들도 행복해 하는 그이의 표정을 보며 이제는 후원자가 되어 있다고 했다.

"오빠는 제가 제일 편히 산다고 그래요. 이 집터도 오빠가 사줬고 집 짓는 비용도 오빠 언니들이 도와줘서 지을 수 있었죠."라고 말하는 최선희씨는 이곳 생활에 너무나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귀농을 결심하던 당시에는 시골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주는 다양한 문화생활 등을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었죠." 그러나 지금의 최선희씨에게 그때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재배하고 이따금 생기는 품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최선희씨는 '지금 여기'의 삶에 자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최선희씨에게도 걱정이 하나 생겼다. 현재 8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는데 사료값이 너무 올라 2마리는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처음 2마리 키울 때는 한 식구처럼 밥을 더 지어서 주곤 했는데 자꾸 늘어나 사료를 먹이다 보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릿수를 줄이긴 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한다.

결혼 안하고 혼자 사는데 노년 걱정은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년 걱정은 해본 적이 없어요. 주변에 서로를 아끼는 지인들도 많고 더군다나 주변 환경이 너무나 좋아요. 철마다 산에서 자라는 자연산 먹을거리와 만족스런 하루하루를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최선희씨는 늘그막에 찾아오게 될 어쩔 수 없는 일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농사일에 기쁨을 느낀다는 최선희씨는 현재 돈이 될 만한 작물을 모색 중이다. 진안군 약초밴처대학에서 기초적인 약초공부를 마친 최선희씨는 약초 재배에 관심을 갖고 있다.
논 661㎡(200평)과 밭 992㎡(300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는 최선희씨는 농사일이 너무 재밌다고 말한다. 농사일로 땀 흘리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마을과 떨어져 혼자살던 그이에게도 얼마전 이웃이 생겼다. 집을 짓고 귀농한 중년의 부부가 그들인데 아저씨가 농사일도 많이 알고 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단다. 무엇보다 외떨어져 있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웃이 생겨 너무 좋다고 한다.

내후년에 2가구가 더 들어올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전기도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 전기가 들어올 수 있게 해준다고는 했는데 그때 가봐야 알겠죠."라고 말하는 최선희씨는 그나마 군에서 태양열 전기 시설을 지원해줘 너무 고맙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열 전기 시설은 전력량이 충분치 않아 냉장고와 같이 전력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은 사용이 힘들다고 한다. 자신은 크게 불편해하지 않지만 옆집 아저씨는 많이 불편해하신다고 한다.

이곳 진안이 살면 살수록 고향처럼 느껴진다는 최선희씨는 읍에 위치한 문화의 집에서 진행하는 수묵담채화반에 나가 배우고 싶지만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다고 한다.

여전한 표정의 양은주전자와 식어버린 총명차 위를 올려다보니 큼지막한 마룻대가 보였다. 그곳에 '생명 ·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 소박한 삶을... 이천사년구월이십삼일'이라는 상량문이 아담한 문체로 쓰여 있었다.
생명, 평화, 아름다움, 소박한 삶.

지금의 최선희씨 모습이 아닌가 싶어 한참을 올려다보았더니 목이 뻐뻣해져 조금 더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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