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는 말 그대로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의이면서 가뭄으로 인하여 쌓였던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정상적인 생활로 환원시키기 위한 제의 및 놀이였던 것이다. Ⅳ. 진안지역 기우제 신앙의 구조1. 진안지역 기우제 신앙의 2중 구조진안지역 마을신앙은 산신제와 당산제(거리제)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진다. 기우제에 있어서도 공간적, 시간적, 주관자 등 3가지 면에서 이중구조를 지님을 파악할 수 있다.첫째 기우제의 공간적 구조를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제당(정천 망화 이포 당산날, 안천 삼락 장등 무제바위)이나 마을 주변에서 높은 봉우리(마령, 백운, 성수: 내동산, 부귀: 운장산) 등 신성한 장소에서 모신다. 산신제당은 마을에서 매우 신성시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산신제 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이곳에 가는 일이 없다. 신신제가 모셔지기 전에 이곳을 깨끗하게 하고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잡인의 출입을 막고 오직 깨끗한 사람만이 참여하여 제를 모시는 장소이다. 그래서 무제를 지내는 장소가 무제봉이 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물가(沼)에서 지낸다. 흔히 용소(정천 봉학 학동 메기소, 상전 월포 대구평 고산골 용소, 백운 신암 유동 각시소)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곳 또한 신성한 곳이다. 용은 수신(水神)의 대표된다. 《용재총화(傭齋叢話)》기록에 보면 오룡제(五龍祭)라 하여 용을 그리거나 만들어 놓고 그 앞에 기우제를 지냈는데, 오행(五行)사상(思想)을 따라 동교(東郊)에는 청룡을 남교(南郊)에는 적룡을 서교(西郊)에는 백룡, 북교(北郊)는 흑룡, 중앙의 통로에는 황룡을 만들어 놓고 제수를 차려 제관으로 하여금 3일간 기우제를 드리도록 했다는 기록하고 있다. 용신을 기우제의 대상신으로 했음을 말해주는 기록이다. 기우제의 공간적 구조는 산과 물 다시 말해 하늘과 땅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진다.둘째는 시간적 구조를 말할 수 있다. 산에 가서 제의를 진행하고 돼지나 염소를 잡고 피를 뿌린다든지 생솔가지나 보릿대를 이용하여 불을 피워 연기를 내는 일은 아침이나 낮에 행한다. 반면에 물가(沼)에서 이루어지는 물싸움, 키씻기, 물까부르기 등은 밤에 이루어진다. 기우제는 시간적으로 낮과 밤, 다시 말해 밝음과 어둠의 이중구조로 행하여진다. 셋째는 주관자를 말할 수 있다. 보통마을에서 지내는 산신제나 당산제 제주는 일반적으로 남자로 선정한다. 때로 부부가 제주가 되기도 한다. 반면 팥죽제 등은 여자가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한다. 그런데 기우제는 산 정상에서 행하는 경우 남자가, 물가(沼)에서 행하는 경우는 여자가 주도적으로 행한다. 주관자를 중심으로 남과 여, 다시 말해 양과 음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기우제 신앙의 이중적 구조를 정리하면 공간적으로 하늘과 땅, 시간적으로 낮과 밤, 주관자는 양과 음이라는 이중적 체제로 구조화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2. 제의(祭儀) 형태(形態)기우제는 낮에 남자들에 의해 산 정상에서 모실 때 가축의 피를 뿌린다거나, 불을 피워 연기를 내는 행사가 이루어진다. 마을에서 기우제장으로 갈 때는 풍물을 치면서 간다. 이때 마을마다 깃발을 앞세우고 간다. 깃발을 서로 꽂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한다. 마을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이때 가축도 산채로 끌고 간다. 보통 돼지, 염소, 닭 등이다. 또는 불을 피울 화목을 각 집마다 각출하여 가져가기도 한다. 그러나 제가 시작되면 엄숙해진다. 제의 모습은 산신제나 당산제와 거의 같다. 산채 끌고 간 가축을 목을 찔러 피를 바위에 뿌린다. 이바위는 마을이나 지역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이다. 용바우, 무제바위, 병풍바위, 감투봉 장태바위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신성한 장소를 더럽히면 신이 노하여 비를 내려 이를 깨끗하게 씻어 준다고 믿는다. 가축의 머리를 땅에 파뭍기도 한다. 생솔가지나 보릿대로 불을 피워 연기를 내는 것은 마치 연기가 구름처럼 몰려오는 것과 같이 연상하여 비가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밤에는 여자들에 의하여 물가(沼)에서 제의가 행하여진다. 이때는 엄숙함보다 그야말로 날궂이를 한다. 챙이(키)나 바가지를 준비하여 마을에서 가까운 물가에서 물을 푸면서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한다든지 물싸움을 한다. 상전면 외송 마을 같은 경우에는 이웃 마을이 내송과 주평마을과 ‘비온다’ ‘비 안 온다’ 하며 말싸움부터 시작하여 물싸움으로 이어진다. 물싸움을 할 때는 자기 마을끼리 편을 나누어 하기도 하며 생활권이 같은 이웃 마을끼리 (주천면의 괴정과 금평, 상전면 금당과 평은)물 싸음을 한다.특이하게 무주군 내도리 굴천 마을은 돌탑에 기우제를 지낸다. 모시는 방법은 여자들이 물싸움을 하면서 날궂이를 하듯이 돌탑 주위에 모여 온갖 장난을 하면서 즐긴다. 웃기고 놀라게 하고 소란스럽게 음주가무를 하면서 지낸다. 기우제 역시 정성스럽게 지내야 한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지냈으면 기우제를 끝내고 산에 서 내려올 때 비를 맞고 내려오고 그렇지 않으면 며칠 후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3. 기우제(祈雨祭) 세력권(勢力圈)산신제와 당산제는 마을에 따라서는 행하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우제는 모든 마을에서 행하여졌다. 그만큼 생존의 문제였고 절박한 문제였다. 그런데 기우제는 마을 단독으로 행하여지는 경우도 있고, 이웃한 마을과 함께 행하기도 하고, 리, 면, 군행정 단위로 행하여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국가적으로 행하여졌다. 마을에서 단독으로 행하고 이웃한 마을(里단위)과 공동으로 행한다(백운면 동창리: 성각산, 성수면 도통리:성수산) 그러면서 중첩되게 마령면은 내동산에서 부귀면은 운장산에서 대규모로 행정기관이 중심이 되어 기우제를 추진하였다. 이 경우에 마을마다 깃발을 들고 자기마을의 세력(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서로 깃발을 먼저 꽂으려고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는 경쟁이자 한편으로 면 단위 사람들이 모여 단합을 과시하기 장이기도 하다.마을 단위에서 기우제를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에는 마을에서 가까운 사찰의 괘불에 제단을 설치하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정천:천황사, 마령: 금당사) 4. 기우제(祈雨祭) 목적(目的)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서 집단의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가뭄이 심하면 심할수록, 기간이 길면 길수록 집단간에 내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표출된다. 그래서 기우제는 자연 마을단위가 아니라 면, 군, 심지어 국가적으로 행하여졌다.<마을을 지키는 직책을 가진 사람의 기우제(祈雨祭) 축문(祝文)생각건대 00년 0월 ㅇㅇ삭 0일 ㅇㅇ마산 이장 000는 감히 마산(마을 이름)의 신에게 고하나이다. 엎드리어 부재로써 이장이 되어 오직 직무에 태만 하였음이 두렵나이다. 하물며 가뭄이 심하옵기 백성의 먹을 것을 걱정함이 절실하지 않겠아옵니까. 불같은 해는 방재 맹렬하여 내 아름다운 곡식을 태웁니다. 혹은 물을 길러 마른 곡식 적시고 혹은 물을 끌어 마른데에 댔사온데 물과 샘이 또한 마르니 백성의 지침이 어찌 극도에 달하지 않겠아오니까. 무릇 사람의 심정이 걱정으로 사무쳐, 못에나 골짜기에 떨어질 것 같으니, 농부에게 무슨 연고가 있겠습니까. 책임은 이장에게 있아오니 허물과 잘못을 살피소서.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을으로 엎드려 삼가 희생과 술을 갖추어 공손히 적은 정성을 드리오니 큰 단비를 빌어 주시와 몽몽히 쏟아 내려 넉넉케 하고 족(足)하게 하여 우리 모든 농부를 위로하여 주소서 바라옵건데, 음향(音響)하소서> 무주 마산마을. 축문에서는 백성들에게 허물이 없고 책무를 가진 사람이 허물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국가적으로 가뭄이 들 때 임금은 부덕의 소치라 하여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와 같이 임금부터 나서서 갈등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해소할 목적으로 기우제는 행하여진다.종교를 인간의 심리적 상태와 욕구와 관련지어서 해서하려는 입장은 말리놉스키(Malinowski)가 대표적이다. 그는 종교적 의례와 주술적 행위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의한 변화에 직면했을 때 갖게 되는 심리적 불안감과 긴장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트로브리안드군도의 주민들은 예상치 못했던 가뭄이나 폭풍의 피해는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하기 힘든 것임을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특별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주술적 의례를 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술을 행한다고 해서 그들이 비과학적이고 유치한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여전히 가장 견고하고 빨리 나갈 수 있는 카누를 만들고 기우제는 우기가 시작될 무렵에 행한다. 결국 이들이 의례를 행하는 것은 안전이나 풍요 그 자체를 오직 주술을 통해서만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행함으로써 인간의 노력과 실제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 사이에 주어지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을 받으려는 것이다>《문화인류학개론》 한상복 외 서울대 출판부 1989년 PP 285-286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기우제에 있어서도 말리놉스키와 같은 종교를 인간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기우제는 보통 하지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행한다. 하지를 넘기면 그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을은 동요할 것이고 잠재되었던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이를 해소할 목적으로 기우제가 반드시 비를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집단의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마을공동체적인 화합을 위해서 추진된다. 범위를 마을 단위로 좁혀 생각해보자. 과거 농촌사회에서는 육식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기우제 때 돼지, 염소, 닭 등 육식과 함께 술을 제공받고 풍물을 치면서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아주머니들이 밤에 냇가에서 옷을 벗고 물싸움을 하는 것도 엄격성에서 벗어나 그 동안에 쌓였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면, 군 단위에서 중첩되게 기우제를 지내는 것 또한 지역민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흔히 마을에 교회나 공소가 있는 신자들이 많으면 산신제나 당산제가 행하여지기 어렵다. 하나의 미신이라 하여 배척한다. 그러나 기우제만큼은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한다. 5. 기우제(祈雨祭) 소멸(消滅)기우제는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의였다. 농경사회에서 물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했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 만 하더라도 수리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아 그야말로 하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댐 건설, 제수지 축조, 지하수 개발 등으로 기우제는 소멸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도 농사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늘이 알아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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