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허경석씨
허 경 석 씨
주천면 주양리 양지마을 출신
재경주천면향우회장(1995년)
송파세무서조사과장(현)
오빌 세무회계사무소 대표세무사
(2009. 1. 15. 개업예정)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성서의 이 기록들은 그가 모태신앙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거의 평생 그의 좌우명으로 간직하며 살아온 구절들이다. 함께 잊지 못하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은 이 세상 모든 자식들 모두가 그러 하겠지만 특히 어머니에 관한 그의 추억은 유별난 그것이었다.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비가 온다/어머니의 늙은 젖꼭지를 만지며 바람이 분다/바람은 평생 동안 불다가 드디어 풀잎위에 고요히 절벽을 올려놓는다/나는 배고픈 달팽이처럼 느리게 어머니 젖가슴 위로 기어 올라가 운다/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를 천만번 죽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으나/때로는 실패한 사랑도 아름다움을 남긴다.

허경석씨는 이렇게 가끔씩 정호승시인의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를 그렇게 읊조리며 부드러운 어머니의 가슴에 안기듯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을 간직하고 있다.

일세기를 살다 가신 그의 어머니 모예분 권사님의 자식들에게로 향한 희생과 부끄러움 없이 근면하게 살다 가신 그분의 일생을 추억하면서 허경석씨는 늦가을 찾아드는 허전한 향수와 함께 어머니 생각에 가슴 서러운 눈물을 짓곤 하는 횟수가 요즘 늘어났다.

6.25전쟁 중에 빨치산의 짐꾼으로 징발되어 끌려갔다 돌아와서 이상한 징후를 보이던 그의 맏형이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 외국 군인들을 보고 정신착란을 일으켜 그렇게 돌아가신 후 가끔씩 구봉산 자락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헤이다가도 눈물짓던 그 어머니, 자신의 신앙을 다하여 기도하고 헌신하여 둘째아들을 교회 담임목사의 일꾼으로 키워내기까지 그 인고의 세월을 허경석씨는 기억하고 있다.

양보하며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살아가라고 교훈하신 아버지의 유훈도 그는 항상 기억하면서 그렇게 세상을 살아왔노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는 1949년 11월 태어나서 주천초등학교와 주천중학교를 마치고 일찍 출가한 누나를 따라서 군산고를 마친다.

전북대학교에서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하고 1998년 11월 총무처에서 시행한 공개경쟁시험에 합격하고(7급을,주사보) 국세청 중부세무서에서 공무원에 입문한 뒤 2003년 8월 5급(사무관)에 임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공직에 머무는 동안 그는 그가 떠나 온 고향에 관하여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애향운동의 선두자였음을 느끼게 하는 많은 흔적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1987년 이후 10여 년 간 고향 후배들에게 전달한 장학금이거나 또 그것이 주경장학회의 모태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그의 긍지거나 공직 중에도 어렵다는 주천면향우회의 회장을 맡아서 동분서주하던 그의 발자취들이 그렇다. 그는 이제 30년의 공직을 마감하고 제3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는 그러한 허경석씨에게 공무원으로서 직무에 정려(精勵)한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을 수여하고 그를 격려한다.

허경석씨는 금년 말 공직을 명예퇴직한 뒤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오빌 세무회계사무소」를 열고 그 대표세무사에 취임할 예정이다.

오빌(ophir)은 구약성서에 좋은 금이 나오는 산출지의 지명으로 아라비아나 아프리카 어느 지역이 아닐까 학자들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는, 오빌의 금은 그렇게 순도가 높은 아주 좋은 금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서중 아브라함이나 솔로몬의 행적에도 그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가 그간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모습에서도 그러하였거니와 특히 필자가 그와 교유 하는 동안의 느낌은, 솔직한 그의 표현이 또는 항상 분주한 그의 일상이 감정표현의 자제력과 함께 발 넓은 그의 행동반경을 대표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세무공무원 30년의 그 세월동안 현실과 실체의 방향감각 속에서 표류하고 고민하며 분노하던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납세자의 의미와 세무공무원의 의미와 또는 민초들이 분노하던 그 많은 의미들을 기억하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의 고향사람 허경석 씨. 그는 조선시대 삼정(田政,軍政,還政)의 문란에 관하여 생각하는, 이 시대 우리 현실을 지켜보는 자세를 잊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유훈이었고 어머니의 묵시적 교훈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느 것은 지혜롭게 적용하고 어느 것은 단호하게 거부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삶으로 풀무불 같은 연단의 과정을 잘 거쳐서 모빌의 금 같은 빛나고 값진 인생을 살 것이라고도 했다.
<허경석씨 연락번호 : 011-9075-7366>

/서 울 취 재 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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