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68 마령면 동촌리 … (2)서촌

▲ 서촌 마을 앞 도로 건너편 모정과 아랫당산나무
한동안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다시 찬바람이 세게 분다. 가뜩이나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살살 빗방울도 떨어진다. 눈이 내리지 않는 것으로 봐선 기온이 그리 낮지는 않은 모양인데, 두꺼운 겨울옷 빈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찬 기운이 가득하다.

이번에 찾은 마을은 마령면 동촌리에서 진안읍 은천리와 하천 하나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서촌(西村) 마을이다.
 
◆여건 안 좋아도 잘 살던 곳
서촌마을은 동촌 위쪽 마을로 '상동촌'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1700년경 달성 서씨가 정착하면서 '서촌(徐村)'이라 고쳐불렀다고 하는데, 이후에 지금의 '서촌(西村)'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서촌은 '서금'이라는 행정리에 묶여 있었다. 그러다 올해 별도 행정리로 분리됐고, 이장도 새로 뽑았다.

예전에는 서른 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워낙 부지런해 인근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부자 마을이었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마을이 골짜기 말미에 있고 눈에 띄는 넓은 농경지도 없어 가난한 마을이었을 거라 짐작했지만, 주민들의 주요 농경지는 인근 마을에 있는 주요 뜰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허투루 돈을 낭비하는 일 없이 열심히 일하고 모은 돈은 농경지를 사는데 사용했더란다.

이 모든 게 착하고 인심 좋은 주민들 성향 때문이라는 자체 평가다. 자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일해 재산을 모으는 건 서촌 마을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서촌 마을도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인구가 많이 줄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열여덟 가구인데, 이 가운데 네 집은 현재 비어있는 상태다. 도시나 외국에 있는 자녀에게 가 있는 경우도 있고,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집도 있다. 그래서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집은 현재 열네 집이다.
 

▲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인 서촌 마을회관
◆당산 할아버지 덕에 평안
서촌 마을은 오랫동안 당산제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마을엔 당산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현재 마을 앞 도로 건너편 정자 옆에 우뚝 선 느티나무가 아랫당산나무인데, 마을에서는 당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을 뒤에도 당산 할머니라고 부르는 윗당산나무가 있었는데, 몇 년 전 죽어 마을에서 어린나무를 심어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예전 당산제는 꽤 시끌벅적했다고 전해진다. 마을 여성들이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남자들은 신명나게 풍물을 쳤다. 제는 윗당산과 아랫당산에서 두 번 지냈다. 대규모 마을 잔치라고 보면 적당할 것이다. 그러다 인구가 줄고 노인들만 남으면서 규모가 많이 축소됐는데, 지금은 돼지머리와 약간의 음식을 마련해 조촐하게 치른다고 한다.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이 제를 올리는 날이다.

인구가 줄고 노인만 남으면 당산제 같은 전통행사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서촌 마을이 이렇게 당산제를 이어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정성을 들인 만큼 마을에 복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서촌마을에서는 이렇다할 인명피해나 큰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옛 동촌교(현재 사용하는 동촌교와 나란히 서 있는 낡은 다리)에서 하천으로 다이빙하면서 놀았다고 하는데, 누구 하나 몸을 상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 마을 앞 도로 회전구간은 논에서 1미터 이상 올라와 있는데, 회전하던 자동차가 운전 미숙이나 부주의로 도로를 이탈해 논에 처박혀도 타고 있는 사람은 어느 한 곳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당산 할아버지가 마을을 보살펴주기 때문이라고 믿는 마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산제를 거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타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이 무탈하고 평안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제를 올린다고 한다.
 

▲ 졸졸 흐르는 도랑을 끼고 있는 서촌 마을 안길
◆만석꾼이 나올 집터
마을 한쪽에 있는 전통방식 목조주택이 눈에 띄어 마당에 들어가 집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목조주택 옆 현대식 주택 안에서 전정숙(69)씨가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침 남편 서진상(76)씨도 집에 있어 마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래 우리 집이 저 목조주택이었어요. 한 38년 됐는데, 우리 큰아들이 허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지난해에 보수공사를 해줬어요. 여기는 8년 전에 지은 것이고요."

전정숙씨의 아들 자랑이 끝이 없었다. 8남매 가운데 맏이로 책임감 강하고 착하기가 어디에 비할 데가 없을 정도란다. 게다가 며느리도 잘 얻고, 8남매가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참 보기 좋단다. 아들 말대로 이제는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효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목조주택 자리가 만석꾼이 나올 집터라는 것이다. 집 뒤쪽 산에는 굵은 고목이 여럿 있는데, 가지가 부러져도 집 반대방향으로 쓰러지고 뿌리도 집 주변에서는 돌아나간다고 한다.
또 집 옆에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샘물도 있는데, 마을은 물론 주변 지역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물맛 좋은 약수터다.
 

▲ 마을 약도
◆올겨울엔 새집에서 따뜻하게
마을 어귀 광장 한쪽에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마을회관이 있다. 그동안 이렇다할 마을 공공시설이 없다가, 마을에서 터를 매입해 짓는 마을회관이기에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한다.

이전에 있던 마을 회의실과 창고 등은 모두 개인 소유가 됐고, 이전에 조그맣게 있던 마을회관은 개인 소유 땅에 있어 20여 년 전에 허물었다고 한다. 참 오랫동안 마을회관 없이 지냈으니, 주민들의 기대가 클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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