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양력 1월 1일 아침이면 전국적으로 해맞이 행사가 벌어지는 곳이 많다. 진안군만 해도 진안읍은 성뫼산 정산에서, 백운면은 내동산 약수암에서, 용담면은 망향의 동산에서, 정천면은 모정리 망향의 동산에서 각각 열린다.

호사가들은 자기고장의 해맞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초하룻날 떠오르는 태양을 남보다 더 빨리 보고픈 생각에서 동해 바닷가를 찾거나 산악인들은 설악산, 지리산, 운장산 등 높은 산 정상으로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새해 첫 태양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 날씨가 흐리면 그런 노력도 허사가 된다. 많은 품을 들여 찾아갔는데 막상 태양을 보지 못했을 경우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하지만 태양을 보고 못보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으로 보다 태양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해 초하루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디 세시풍속에는 정월대보름의 달맞이는 있어도 설날의 해맞이 행사는 없는데 음력은 달과 관계가 있지 태양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날이란 그해의 첫날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는 설날이 사실상 두 개다.

우리나라는 법정으로 태양력을 사용하므로 양력 1월 1일이 설날이어야 맞다. 그럼에도 우리의 공식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로 정해져 있다. 이는 나라의 제도와 국민정서가 끝까지 평행선을 달린 결과다.

지구의 기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태양이므로 태양력을 쓰는 것은 당연히 편리하다. 서구에서는 일찍이 태양력을 사용했고 일본도 메이지 유신이후 태양력을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1896년부터 정식으로 건양(建陽)이란 연호를 사용하고 양력 1월1일을 공식적인 양력설로 지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음력에 익숙해 있어 약력이 착근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음력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달의 작용에 따른 밀물과 썰물을 헤아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일진(日辰)과 월건(月建)이 음력에 의거하였기 때문에 생일과 기일(忌日)도 음력에 따르고 택일, 사주팔자보기 등 민속과 속신(俗信)이 모두 음력에 터 잡았기 때문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자 양력사용을 강제하고 음력설을 쇠지 못하도록 강권을 휘둘렀으나 결국 음력설을 없애지는 못하였다.

광복 후 수립된 우리 정부에서도 음력설을 쇠는 것은 이중과세라 해서 공식적으로는 음력설을 인정하지 아니하였으나 여전히 국민들은 음력설이 대세였다. 우려곡절을 겪은 끝에 대세에 밀려 1985년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게 되었으나 그 명칭도 어중간한데다가 하루의 휴무를 주는 정도라 국민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마침내 1989년 정부에서는 음력설을 설이라 공식으로 명명하고 3일간의 휴무를 주는 대신 양력설에는 하루의 휴무만 배정했다. 합리적 제도보다는 오랜 전통과 관행에 자리 잡은 국민정서가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진정으로 새해 첫날이 언제인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설날은 추석처럼 우리 고유의 명절로 받아드려 조상숭배, 효도, 우애의 정신을 기르는 기회로 삼고, 양력 초하루는 지구가 태양을 한 번 공전하는 날의 기점으로 삼아 새해의 시작으로 기념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도 양력 초하룻날의 해맞이는 의미가 있다. 동해안이나 높은 산을 찾지 않더라도 가까운 해맞이 행사장을 찾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서로 덕담이라도 나눠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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