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윤일호 교사

한참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데 우리 반 남자 아이 하나가 배에 손을 대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계속 바라본다. 보아하니 화장실이 급한 것 같아 눈짓으로 다녀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주저주저하다 화장실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상하다 싶어 한참 후에 돌아온 아이에게 어디를 다녀왔느냐 물으니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대답한 것이 학교 앞 자기 집에 가서 똥을 누고 온다는 것이다. 하도 기가 막혀 까닭을 물으니 학교에서 똥을 누면 냄새가 나고 그 냄새가 쉬 빠지지 않아 금세 똥 눈 게 들통 난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중학교 큰 형들이 오줌을 누러 와서 똥 냄새가 나면 아이들에게 캐물어 똥 눈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어 면박을 주기 때문에 웬만해선 아이들이 학교에서 똥을 누지 않는다고 했다. 형들 눈치를 보느라 똥도 맘대로 못 누고 지내는 셈이다. 아직 학교에서 똥 누는 것이 서투른 나이 어린 저학년 동생들은 더욱 그러하다고, 혹시나 대변기에 똥이라도 묻어 있으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생각건대 아마도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많은 학교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 싶다. 사실 학교에서 똥 누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긴 하다. 정해진 수업 시간이 있고, 짧은 쉬는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화장실에서 똥을 눈다는 것이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똥이 마려운 것을 참고 참아서 집에까지 가서 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큰 학교에서야 학생수도 많고 화장실도 크니 화장실에서 누가 똥을 누었는지 알 수 없겠지만 우리처럼 작은 학교에선 누가 무었을 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학교에서 똥 누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누워도 좋다고, 큰 형들은 그거 가지고 제발 놀리지 말라고 전체 아이들을 모아 놓고 타이른 적이 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배설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하는 일이 잘 될 리 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아이들이 학교 화장실에서 똥 누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 특히 학교에서 똥 누는 것이 익숙하지 못한 1, 2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똥을 편하게 눌 수 있게 되었다. 가끔씩 변기 옆에 똥을 묻히고, 물을 내리지 않아 냄새가 심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학교에서 똥을 누웠다고 중학교 형들에게 핀잔을 듣진 않는다. 가끔씩 화장실에서 찐한 똥냄새가 나도 똥 누러 가는 것을 아이들끼리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보란 듯이 자주 아이들 화장실에서 똥을 눈다. 선생님 화장실이라고 1층에 화장실이 있지만 일부러 나는 아이들 화장실을 쓴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똥 누러 들어가면서 오줌 누는 아이들에게 "야, 나 똥 누러 들어간다 잉~"하고 말하면 아이들에 "우웩~", "으, 냄새."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자기들이 쓰는 화장실을 선생도 똑 같이 쓰니 화장실을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학생 시절,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서 밖에서 기다리는 동무들이나 선배, 동생들에게 똥을 누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더 누고 싶은 걸 애써 참고 똥을 끊어서 누었던 기억이 있다. 마치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려고 화장실 안에서 숨을 죽이고 똥을 누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눈 똥은 거름으로 바뀌어 우리 밥상에 맛있고 싱싱한 채소로 올라왔다. 그렇지만 재래식 화장실이 사라지고, 수세식 화장실이 생기면서 똥은 거추장스럽고, 더러운 것이 되었다. 

옛날이야기에 숱하게 나오는 똥은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였으며 때로는 귀한 보물이나 다름없어 아무리 똥이 마려워도 참고 참아서 집에서 눈다고도 하였다.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재산이었기에 똥을 귀히 여긴 것이다.

그러던 것이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똥이 없어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비료와 퇴비가 생기면서 똥은 푸대접받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설물이 된 것이다. 예전에 그렇게 귀하던 똥이 이젠 13리터의 물을 소비해가면서 버려야 하는 오물이 된 것이다.

오물 취급을 받으니 똥을 누고 버린 값으로 돈도 내야 한다. 오줌도 마찬가지다. 오줌 한 번 누고 냄새 난나고 약 3,4리터의 물을 내려야 한다.
소변기가 없을 땐 대변기에 똥을 눈 것과 마찬가지로 물을 쏟아 부어야 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오줌과 똥은 배설물일 뿐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똥과 오줌을 더러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똥이 귀하다고 해도 도시 한 복판에서 똥은 배설물일 뿐이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요즘 아이들 똥은 구더기도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다들 잘 알겠지만 아이들 먹을거리가 좋지 않은 결과다. 내 몸에서 나오는 똥과 오줌을 소중히 여긴다면 마땅히 먹는 것을 가려서 먹게 되고,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새삼스럽지만 아이들에게 똥과 오줌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자. 하다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설물은 아니라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주자. 그래야 똥과 오줌이 건강하니까. 우선 어른들부터 생각을 다시 했으면 싶다. 똥은 절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오늘 아침에도 학교화장실에서 구수한 똥냄새가 풍긴다.
"○○야, 똥 잘 눠?"
"응~ 예~~~."

(이 글은 2008년 12월 글쓰기 회보에 실린 글을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윤일호 교사는 한국 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으로 송풍초등학교에서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아이들을 만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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