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72 상전면 주평리(2)…회사·문화마을
상전면소재지 불구 가게 없어 주민 불편

▲ 마을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추영희(78), 김옥분(79), 백언년(77), 정정남(75), 김옥순(75)씨.
지난주 원주평마을에 이어 상전면 주평리를 다시 찾았다. 면사무소를 눈앞에 두고 버스가 돌아나가는 큰 사거리에 섰다. 왼쪽으로는 회사마을(이장 박종석), 앞쪽으로는 문화마을(이장 박연생)이 보였다.

멀리 마을 초입에서 바라봤을 때는 같은 마을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마을은 이렇다 할 언덕도 없이 작은 다랑이 논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는 표석을 보고서야 다른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른 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왼쪽의 회사마을은 어느 시골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폐가 등 대부분 낡은 옛 집인데 비해 앞쪽의 문화마을은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깔끔하고 규모 있는 집들이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된 길도 반듯하다.

먼저, 가구 수가 더 많아 보이는 회사마을 쪽으로 들어섰다. 오른편으로 언제 문을 닫았는지 모를 농협 건물이 적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마당에 태극기가 나부끼는 건물이 보였다. 마을회관이었다. 좀 낡아 보이는 회관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뿌옇게 낀 안경의 습기였다. 바깥 날씨가 추웠던 모양이다.

회관 안에는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들과 박종석 이장님이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마을의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 지방문화재 제72호 회사동 3층 석탑
젊은 세대 없이 조용한 회사마을 … 마을에 '회사'란 절이 있었다 하여 이름을 회사마을이라 불렀다. 또 전나무가 있는 절골이라는 데서 젓절골이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26세대 8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70대 이상이다.

박 이장님과 집적 옛 절터를 가보았는데 지금은 그 터 전체가 인삼을 경작하고 있어 인삼밭 사이로 조심스레 갈 수밖에 없었다. 절터에는 3층 석탑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지방문화재 72호인 회사동 석탑이다. 중간층은 시멘트로 복원 비슷하게 해 놓아서 보기가 좋지 않았다.

멀리서 마을을 보았을 때 마을 뒤편으로 소나무가 무성함을 볼 수 있었는데 이장님과 집적 가보니 수령 미상의 노송(육송)이 20여 주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굵직굵직하고 훤칠하여 보기가 좋았다. 평행봉, 철봉 등 잡풀 사이로 군데군데 운동기구가 눈에 띄었다. 오래 방치된 듯 여기저기 녹슨 흔적이 보였다. 소나무 사이로 바닥을 자세히 보니 아기자기했을 듯한 작은 고부랑길도 보였다.

박 이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지난 2002년 초 면에서 소공원으로 지정하여 체육시설, 건강 걷기 길, 휴식시설 등 2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원한 소나무숲에 조성된 공원을 마을 주민들이 많이 이용했지만 해가 갈수록 이용률이 떨어져 지금은 거의 찾지를 않는다고 한다. 도시로의 이주와 고령화가 원인이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이 마을에는 한글반이 구성되어 있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을 위해 상전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김계순 평생학습지도자가 매주 2회 회관으로 직접 방문해 한글을 가르친다고 했다. 마침 찾아간 날에 수업이 있었는데 '토마토', '감자' 등의 낱말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 회사마을회관 정문 모습
각기 다른 마을에서 이주해 오순도순 … 내쳐 발길을 문화마을로 돌렸다. 다른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웠지만 마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작고 낡은 집들이 대부분인 회사마을과는 달리 적벽돌로 지어진 널찍널찍한 집들 일색이었다. 그런데 집수는 몇 채 되지 않았다. 마을에서 주민 허문수(57)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마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화마을은 원주평마을과 같이 용담댐 건설로 인해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그런데 원주평과는 달리 같은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갈현리, 용평리, 수동리 등 각기 다른 마을에서 모였다.

마을에는 '문화촌'이라는 간판의 식당이 있는데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면소재지라는 주평리에 식당은 물론 구멍가게 하나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협에 마트가 있었는데 그나마 없어져 너무 불편하다는 게 만나본 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의 배차 시간도 점점 줄어드는 형편이라 자동차가 없는 노인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마을 안에는 유난히 반듯반듯한 밭이 많았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집터로 조성해 놓은 것이란다. 지난 1999년 마을을 조성할 당시, 문화마을에는 58세대가 들어올 예정으로 집터를 마련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주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현재는 10세대 25명의 주민이 있을 뿐이다. 작은 마을치고는 마을회관이 유난히 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 중심 도로에는 양 옆으로 벚나무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봄철에는 이곳 벚꽃이 마이산 벚꽃보다 더 보기 좋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이구동성이다.

문화마을 안에는 '상전벧엘교회'가 있는데 이곳 마을은 물론 회사마을 주민 대부분이 다닌다고 했다. 각기 다른 마을에서 이주해 왔지만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게 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는 듯했다.

▲ 넓게 새로 지어진 문화마을회관 모습
▲ 문화마을 주민 허문수(72)씨가 집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 폐쇄된 농협. 이곳 마트가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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