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규홍 <새진안포럼·주천면 무릉리>

"우리가 하고 있는 글쓰기 교육은 아이들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는 가운데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이다. 이것을 우리는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바르게, 건강하게 키워가는 데 있다.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에 글쓰기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모범적인 글, 완전한 글을 얻으려고 아이들을 지도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이전에 살아가는 길부터 찾게 한다.

그래서 쓸 거리를 찾고, 구상을 하고, 글을 다듬고 고치고, 감상 비평하는 가운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남을 이해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를 알고, 살아 있는 말을 쓰는 태도를 익히게 한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이오덕 선생이 제3회 단재상 시상식에서 하신 말씀 (1988. 4. 8)-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바른 글과 바른 말, 바른 삶을 가꾸며 가르치는데 바친 이오덕 선생은 글쓰기 교육의 목표가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고 했다.

또한 글을 쓰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남을 이해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를 알고, 살아 있는 말을 쓰는 태도를 익히게 된다면서 글쓰기가 어떻게 사람을 성장시키는가를 설명하곤 했다.

글쓰기의 이런 효과는 비단 어린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걸출한 입담으로 사람들 앞에서 잘 떠들던 어른도 종이와 연필을 쥐어주고 지금 한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하면 일단 주저하게 된다. 심지어 금방 자기가 한 말임에도 한 글자도 글로 옮겨내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말하듯이 글을 쓰는 훈련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훈련이 돼있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글이 말처럼 뱉어내고 나면 곧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서 누군가에게 읽히게 될 거란 부담이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남에게 책잡히지 않는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글의 대상을 조사하고, 관찰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여러 과정을 통해 작가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성장해 간다. 이른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글쓰기를 통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다. 곧 글을 쓰며 삶이 가꾸어지고 스스로 바로 서게 되는 이치이기도 하다.

"어떤 일에 관심이 쏠려 있어서 기쁘거나 괴롭거나 답답하거나 그립거나?하는 온갖 감정들이 그런 일에 얽혀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면 대개는 그런 일을 시원스럽게 남에게 털어놓고 싶어 할 것이다. 글은 이렇게 해서 쓰인다. '쓰고 싶은 마음, 쓰고 싶은 것' 을 마음대로 붙잡아 쓸 수 있어야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인 것이다. 체험한 것을 생생하게 되살려 정직하게 자세하게 쓰면 되는 것이다." / 이오덕

자기가 보고 듣고 행한 것에 자기의 느낌을 담아 정직하게 쓰는 일이 글쓰기의 처음이요 마지막이 될 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이 아닌 미리 제목을 정해놓고 머리로 꾸며내고 지어내는 잘못된'글짓기'(무슨무슨 백일장 같은)가 아직도 여기저기서 횡행한다.

이런 글짓기에 오염된 어른들로부터 영향 받지 않은 어린이라면 자기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정직하게 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써야한다. 어른도 똑같다.

스스로 쓰고 싶은 것을 신명나게 쓰다보면 글쓰기에 재미가 생긴다. 재미있게 글을 쓰면서 자기도 모르게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사며 지난 삶을 참 재미있게 주저리주저리 내게 늘어놓는 동네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글로 써 보라고 했더니 "에이, 글은 무슨. 내가 글재주가 어디 있어."하신다. 그냥 말하듯이 쓰면 된다고 했는데도 손사래를 치시고는 얘기를 이어간다.

나는 세상을 많이 사신 어른들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삶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먼저 산 사람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될 것이다. 잘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뽐내며 남기는 자서전이 아니라 살면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기록, 그런 작업이야말로 후대에게 참 소중하고 의미 있는 교훈과 숨은 역사가 되리라 믿는다.

그 기록 속에는 개인사뿐만 아니라 글쓴이가 몸담고 살아온 지역 공동체와 시대의 역사가 함께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나 장년들께도 글쓰기를 권한다. 글쓰기는 나와 이웃,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로 세우고 정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 단체를 이끌거나 지역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앞뒤도 맞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나서서 설쳐대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골방에 앉아서 묵상하듯 자기의 생각을 꼼꼼히 글로 정리하다보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말하면 나를 바로 세우는 기능을 하는 게 글쓰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글 한번 잘못(?) 썼다가 곤욕을 치르는 미네르바를 보며'대한민국이 정말 내 나라가 맞나'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누구든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은 전문가나 많이 배운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쓸 수 있고 그 글의 진위나 가치는 읽는 사람이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잘못한 것은 미네르바 같은 논객들이 아니라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무식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다.

잘못된 법과 제도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꿈꾸는 올바른 사회를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기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히고 서로 비판해가며 세상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곧 나를 바로 세우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바로 세워지면 공동체는 덩달아 바로 세워진다. 그런 당당하고 솔직한 자기표현이 모아져 우리 사는 세상이 바로 세워졌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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