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필자의 빈약한 서가에 오래된 책이 하나 꽂혀있는 데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내용은 1970년대 개발독재시절에 난장이로 표현되는 도시 빈민층, 철거민 등 소외계층의 실상을 연작소설 형식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으로 인하여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뒤에 감추어진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우리 사회의 어두운 실상이 만천하에 들어나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의식 함양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이후로도 꾸준히 팔려 연 100만부라는 판매부수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이 책이 꾸준히 팔렸다는 사실은 그 뒤로도 그 소설의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할 만큼 아직도 우리 사회에 소외계층이 많고 또 사회문제로 남아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 조세희 작가가 엊그제 다시 우리들 앞에 섰다. 용산의 참사현장이었다.

그의 말을 간추리면
"30년 전의 그때는 (철거시) 망치, 큰 해머가 전부였다. 30년 후면 뭐가 발전이 돼 있어야 했는데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 책(난쏘공) 쓸 때에는 미래에는 이런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런데 30년 동안 발전했다며 오늘에 다다랐다. 오늘은 21세기의 어느 날이다. 한국에서는 왜 가난뱅이만 두들겨 맞고, 희생을 치르고, 잘사는 권력층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행복을 누리고 좋은 나날을 보내야 하나.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 하는 자는 도둑이거나, 아니면 바보다. 한국이 존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고생하고 있나. 비정규직 850만, 농민 300만이 있다. 지금까지 버텨온 건 착취의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기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만 잘 지키면 모든 게 잘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존재하나 마나다. 비정규직이라는 것 상상도 못한 것이다."

작가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해준다.
경제발전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사람은 돈만 많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가?
그곳 용산지역은 재벌이 주상복합단지를 만든다고 한다.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설경기에도 약간은 도움을 줄 것이다. 잘 분양이 되면 시공사도 돈을 벌 것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원치 않은 이주를 해야 할 사람들의 손해와 박탈감은 무엇으로 보상하나?

그래서 그들은 시위를 하고 농성의 방법을 택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회나 시위를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길은 집회나 시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집회나 시위가 지금의 집권층에게는 몹시 못마땅한가 보다. 기회 있는 대로 '떼법은 안된다'거나 '법치', '준법'을 강조한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두고 서울경찰청장의 책임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도 미적미적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여권에서는 농성자들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경찰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투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날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민심수습차원에서라도 내각이 총사퇴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이 정부는 여론 따위는 아랑곳없이 독야청청이다. 어차피 지지율 30%도 못되는데 여론에 신경 쓸 여지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번 일이 서울경찰청장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참여정부시절 농민집회 때 한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을 때 경찰청장은 사임하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런 시절 같으면 이처럼 무모하게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일이 생겼을 리 없다.

"30년 후에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는 말했다.
30년 전에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지금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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