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라디오는 한때 시대의 총아였다. 뉴스와 음악 감상, 연속극, 스포츠중계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매개체(媒介體)였다. 그런 라디오를 듣지 못한다는 건 엄청난 '문화적 소외'를 의미하는 일이었다.
그때의 시골 형편들이 거의 그러했지만 진안도 라디오 난청지대에 속하였다.

당시의 라디오는 AM(진폭변조)이라 부르는 '중파(中波)'라는 전파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파는 구부러져 가는 성질이 있으므로 산을 넘고 장애물을 넘어 전파의 세기에 따라 멀리까지 도달한다. 또 하늘의 전리층(電離層)에 반사되어 목표하지 않은 곳까지 엉뚱하게 멀리 가는 수도 있다.

이런 전리층 반사현상은 낮보다는 밤에 더욱 잘 나타난다. 특히 진안에서 밤에 855khz 전주 MBC라디오를 듣다보면 갑자기 격한 억양의 평양방송이 끼어들기 예사였다. 예전에 전주MBC라디오를 듣다 잠든 사람들이 북한방송을 듣는 것으로 오인되어 순찰하는 경찰에게 연행당해 곤욕을 치룬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있었다.

중파는 여러 가지 전기잡음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 진안지방에서 특히 야간에 라디오를 듣노라면 '윙' 소리나 '지-직'거리는 전기잡음으로 듣기가 힘들 정도였다.

중파보다는 파장이 짧은 단파방송도 있었는데 전리층에는 잘 반사되어 원거리 방송에는 적합하지만 멀리 퍼져나가지 못하여 근거리 방송에는 적합하지 못하였다. 지금 아마추어 무선사(HAM)들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단파이다.

이후 FM(주파수변조방식)이라는 라디오방송이 등장하였다. FM은 잡음이 없는 대신 전파가 구부러지는 성질이 없이 직진하기만 하므로 가시권 지역만 들을 수 있어 방송국이나 중계소가 없는 시골은 역시 들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국 측에서는 가청권을 늘리려고 높은 산 등에 송신소를 세우고 출력을 늘리는 등 여러 가지 조처를 취한 결과 가청권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특히 진안읍내는 전파의 사각지대에 속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런대로 들리던 FM도 진안읍내만 들어오면 먹통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지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불량전기기기 때문 같기도 하다.

라디오시절이 TV로 바뀐 이후 TV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TV 전파도 직진파라 가시권이 시청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안군지역에서는 전주방송보다는 광주방송을, 지역에 따라서는 대전방송, 심지어 대구방송을 시청하는 곳도 있었다. 전주의 당시 미륵산 중계소(뒤에 모악산으로 옮겨졌다)보다 광주의 무등산중계소, 대전의 식장산중계소 등이 더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진안지역에서는 전주의 KBS1, 2, MBC, SBS, EBS를 모두 시청할 수 있는 곳은 아예 없었다.
지금 진안읍내에서도 전주SBS를 자체 안테나만으로는 볼 수가 없다. 이에 많은 가구가 유선방송이나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신세를 지게 됨으로 TV 난시청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라디오 난시청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라디오는 TV에 밀려 예전처럼 많이 듣지는 않는다. 그러나 라디오를 애청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운전자나 작업자는 TV보다 라디오가 제격이다. 또 라디오의 음악방송 등을 즐겨하는 마니아도 상당수 있다. 요즘 난청지역에서 라디오를 들으려면 인터넷을 통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차중이나 작업장에서는 그 방법이 통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난한 인구의 도시 집중화 현상은 <전파의 차별>로 인한 시골지역의 문화적 소외에서도 그 책임의 일단을 찾을 것 같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