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2009 신춘방담(新春放談) ②
윤 영 신(서울타임스회장)

◆ 나그네 길에 서다.
피안(彼岸.Faramita)이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사바세계(裟婆世界)를 떠난 열반상락(涅槃常樂)의 오성(悟性)의 세계를 지칭하는 불교용어이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아니하는 관념적으로 고안해 낸 현실 밖의 경지(境地)를 말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도정(道程)이란 길의 이수(里數) 또는 여행의 경로(經路)라고 사전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즉 성서 속의 에덴이거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그 세계 이거나 혹은 홍길동이 꿈꾸던 이상향(理想鄕) 같은 육안(肉眼)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고 이성(理性)만이 파악 할 수 있는 도원경(桃源境)이거나, 황천국(黃泉國)이거나, 히데스(Hades)이거나 하는 원시시대 이래 인간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시공(時空)을 단절(斷切)하여 나타나는 타계관념(他界觀念) 현상인 것이다.

원죄(原罪.Orignal sin)를 생각한다.
창조주에게 불순종하고 사악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여 저지른 인간 최초의 근본악(根本惡)을 말한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 할 때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한 일은 책임을 지고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人格)으로 창조하였을 것이다.

인간은(Adam은 헤브라이어로 인간을 뜻한다.) 사탄의 사악한 유혹에 빠졌고, 창조주와 동일한 반열이 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원죄를 범한 것이다. 성서는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이라고 그렇게 원죄를 기록하고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 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 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 끼리 반갑다" 시인 한하운이 천형(天刑)의 병고(病苦)를 안고 젊음과 인생과 미래를 체념하고 육신(肉身)의 고향을 떠나서 그야말로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방랑하는 소록도 가는 길은 절박하게 살고 싶은 한 인간이 인생의 국외자(局外者)로 유리(遊離)의 가두(街頭)에 밀린 채 한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부림을 읽는 것 같은 그러한 소름끼침 이었다.

1960년대 후반 최희준이라는 가수는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하고 인생을 하숙생으로 둔갑시켜 정말 인생의 국외자(局外者)로 유리(遊離)되어 가두(街頭)를 헤매고 있었던 그 당시 인간들의 가슴속을 서럽게 하기도 하였다.

오늘의 우리네 인생이 내일은 과연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정말로는 우리네 인생들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흘러 온 것 일까, 무엇을 찾아서 여기까지 와 있는 것 일까,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 일까, 어디쯤 와 있는 것 일까. 과연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 세상의 모든 비참과 비극적인 실존(實存)을 대의(大義)와 소아(小我)에서 결부시켜 보는 것은 인간의 원죄가 저지른 인간의 이기적(利己的)인 사고방식(思考方式)과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자기본위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그 의식이, 소속집단이거나 주위의 모든 인간들에게 끼쳐진 해악(害惡)을 인간의 책임성과 필연성의 긴장관계에 관하여 간과(看過)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속설(俗說)에 의하면 "무식(無識)한 인간이 용감하다."하였다더라. 나설 자리 나서지 않을 자리 구분 없이 나서는 인간의 행태(行態)를 이름 함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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