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 조효숙 선생님
집에서, 학교에서 말썽쟁이라고 불리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치료실에서 그 아이가 밖으로 뿜어내는 공격성은 무시무시할 정도였지요. 놀이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청소년이 되었을 때 아이와 그 둘레가 얼마나 큰 전쟁을 치를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그 아이 마음의 전쟁을 너끈히 담아주는 그릇으로, 사랑과 인내로 버텨내는 엄마로 반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제가 믿었던 대로 지금 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전율감을 느낍니다. 내면 작업을 하는 모습이 정말 마술 같아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며 나를 시험해보더니 어느새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연금술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우, 속에서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상담자를 하느님처럼 경외하라'라는 말의 의미를 알겠어요. 어린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싶습니다. 어린이는 미숙하고 유치한 속성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어른들의 세상에 '자기' -Self-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아이의 놀이에 함께 하며 깨달음, 거듭남, 부활, 재생, 영적 탄생 … 이런 낱말들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크릭터>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아들이 할머니가 된 어머니께 보낸 선물, 크릭터는 뱀입니다. 이 보아뱀을 할머니가 아기처럼 먹이고 재우고 온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지요. 드디어 교사인 할머니를 따라 학교에 간 크릭터는 제 몸으로 글자와 숫자도 만들어 보이고, 미끄럼틀 타기, 줄넘기 하는 아이들의 놀잇감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할머니를 구합니다.

이 아이가 한참 뱀이나 개구리, 두꺼비, 해골들을 엄마 앞에 불쑥 내밀면 할머니가 크릭터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엄마는 꺄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이름은 위대합니다. 자식의 힘들었던 아기 때의 고통을 받아주었습니다.

자식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 용기에 다시 한 번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와 아이 부모가 견뎌내는 동안 아이는 쑥쑥 커갔습니다. 이 아이는 젖을 제대로 못 먹고 보채기만 하다 돌 전에 엄마와 떨어져 살았고 집에 돌아왔을 땐 동생이 엄마 아빠 사이에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늘 이 아이가 동생보다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키우기가 힘들다 했습니다. 그 속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뱀이 아주 멋지게 변신을 했어요. 리본을 묶고 무지개 빛의 색테잎을 둘러서 엄마 앞에 선물로 태어났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멋지게 커갈지 기대가 됩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간절히 무언가를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아이와 정신이 성숙해가는 것을 공유하며 '이것이 우주가 내게 답하는 것이구나.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 아이가 결코 말썽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난 영혼의 아름다움을.
천상병의 시가 떠오릅니다.

나 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죽은 나무라고 그랬다./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하늘을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2009.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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