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헌법재판소가 사망을 제외한 교통사고 시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기소할 수 없다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보험업계는 바로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이 결정의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는 사고를 내 피해자에게 중상을 입히고도 병원 한번 찾아오지도 않고 사과도 없는 가해자들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정하고 몰상식한 가해자들이 뜻밖으로 많은 모양이다.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사과도 없이 무조건 돈이면 된다는 금전만능의 풍조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 법은 1982년에 시행되었는데 이 법의 입법취지는 부득이하게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피해자와의 합의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시정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공직자나 직장인들이 형사소추를 당하게 되면 신분이나 직장생활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질 나쁜 피해자들에 걸리면 합의를 빌미로 터무니없는 배상을 요구받는 일이 하나 둘이 아니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법의 면책조항이 효력을 잃으면 그런 반작용이 다시 나타날 것은 뻔하다.
헌재는 사지절단이나 뇌사상태 등의 중상은 사망보다 더 고통스럽고 피해가 큰데도 형사소추가 면제되는 것은 균형에 맞지 않는다고 본 모양이다. 그럼 중상의 범위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얼굴이 찢어지는 상해를 입어도 진단은 전치 3주가 보통이고 손가락 등이 삔 가벼운 상해도 전치 4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상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어떤 상해는 시일을 두고 예후를 살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를 어떤 기준으로 처리해야할지 교통사고당무자들은 당장 난감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과격한 운전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또한 너무 낙관적인 시각이다. 면책조항이 없었을 때의 교통사고율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하여 교통사고율이 너무 높은데 그 이유는 잘못된 운전관행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잘못된 운전관행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면책조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실 이 법은 무조건 면책조항을 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안전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법은 뺑소니,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속도위반, 앞지르기·끼어들기위반, 건널목사고, 횡단보도보행자보호위반, 무면허운전, 음주운전, 보도침범운전, 승객의 추락방지의무위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상해 등의 경우는 면책이 안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을 지킨다면 교통사고는 거의 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사고가 나도 사망이나 중상에 이르는 대형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의 면책조항만을 문제 삼는 것은 그야말로 문제가 있다.

교통사고는 대부분 위 11개항을 위반함으로써 일어난다고 봐도 된다. 지키지 않는 법은 의미가 없다. 운전자들의 준법정신이 확립된다면 교통사고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더불어 사법당국의 온정주의도 문제가 있다.

사고 시 될 수 있으면 운전자를 봐주려 법규위반을 철저히 추궁하지 아니하는 경향이 있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선진사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지킬 법은 지키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