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77 정천면 모정리…정자동마을
이주한 곳에서 어렵지만 화합하며 결속력 다져

▲ 정천 망향의동산에서 내려다 본 정자동 마을 모습.
정천면 모정리는 상전에서 흐르는 금월천과 정천면 운장산에서 흐르는 정자천이 합류하는 곳이었다. 물과 터전이 풍부했던 모정리는 당시 부러울 것이 없었다고 한다. 모정리 뜰은 마령면 뜰과 동향면 대량리 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이 모든 것은 물속에 잠겼다.
 
◆근근이 자급자족하는 생활
풍요했던 모정리 망덕마을 주민들이 새롭게 이주한 곳은 정자동 마을이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이주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1999년부터 입주를 시작해 2000년에 7가구가 정착했다. 그러나 현재는 15가구가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 여의치 않아 텃밭에 자급자족하고 있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지. 이주해 오긴 왔는데 지금은 후회돼. 정자동 마을로 이주해 농사짓지 않는 것이 편안하기는 한데 돈이 있어야 생활을 하지. 돈을 벌고 싶어도 돈을 벌 방법이 없어."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이순이(79), 최병례(73), 이옥네(70), 유순임(65)씨 등 주민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용담댐으로 수몰되기 전을 회상하면 기가 찰 노릇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이주해 오기 전에는 힘든 농촌생활이었지만 농토가 있어 지금처럼 걱정하며 생활하는 삶은 아니었다.

"지금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에 머물고 있지만 수몰되기 전에 살던 모정리는 곡식이 잘되던 곳 가운데 한 곳이었죠. 봄에 보리를 수확하고, 양력 7월에 벼를 심어 가을에 수확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였죠. 그만큼 모정리는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고흥석(67)씨의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의 생활을 기대하기란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 좌측부터 고흥석, 이옥네, 이순이, 유순임, 최병례 씨
◆화합하며 하나가 되는 정자동
정자동 마을은 주민들이 모여 상의한 끝에 마을 이름을 결정했다. 그렇게 지은 마을 이름은 '정자동'이다. 수몰되기 전 모정리에는 정자내 마을이 있었고, 정자천이 흐르는 곳에 살았다는 의미에서 '정자'와 마을 '동'자를 합해 정자동 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마을 이름을 짓는 것처럼 정자동 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마을 대청소 날이면 어김없이 전 주민이 참여를 한다. 이날만큼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청소하고,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함께 나눈다.

이처럼 어렵고 왜소한 마을이지만 정자동 주민들의 화합과 결속력은 다른 곳에 뒤지지 않는다.
"정자동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자고 어른들이 자청하고 나섰죠. 정부와 군에서 마을회관 등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마을주민들도 일조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작했어요.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는 대청소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어요."

고흥석씨는 스스로 참여해 마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고마운지 마을 자랑에 입이 마를 정도다.

정든 삶의 터전은 잃었지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생활하는데 어렵고 불편함이 있어도 화합하는 주민들이 왠지 또 다름을 자아내는 것 같다.
 

▲ 정자동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시멘트 포장길로 개선됐다.
◆고향을 앞에 두고 못 가는 심정
고향을 떠나기가 싫어 새로운 터전에 몸을 맡긴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망덕마을 주민이라고 한다. 새로 조성된 정자동 마을에 살고는 있지만 고향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몰된 곳을 바라보면서 옛 생각에 잠시나마 잠겨보기도 한다.

낮에는 넓은 농토에서 일하고, 물이 맑은 하천에서는 물고기와 다슬기를 잡던 기억도 남달랐던 모양이다.
은린옥척(모양이 좋고 큰 물고기)의 많은 물고기가 뛰어 놀던 곳, 이곳이 정자동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고향이다.

맑고 깨끗한 곳에서 금방 건져 올린 물고기는 횟감으로 최고였다. 그리고 어죽을 끊여 나눠 먹었던 기억 등은 잊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하천에는 아낙들이 밤이면 불빛을 비춰가며 잡았던 다슬기도 풍부했다. 얼마나 풍부했으면 다슬기를 먹는 소리가 온 동네를 뒤덮을 정도로 요란했다고 한다.
이렇게 생활한 기억은 지금에 와서 쉽게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정자천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로 쓸고 올라가면 엄청나게 잡혔죠. 잡은 물고기로 회도해 먹고, 어죽을 끓여 먹기도 했으니까요. 그만큼 풍부했어요. 다슬기도 많았죠. 저녁이면 집집마다 다슬기를 빨아먹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어요."

주민들의 눈앞에는 아직도 정겹고 행복했던 수몰전 마을살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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