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2009 신춘방담(新春放談) ⑤
윤영신(서울타임스회장)

·고양이와 생선가게 이야기 계속
고양이와 생선가게 이야기를 더 계속한다 해도 그 이야기들을 여기서 다 할 수는 없다. 그 이야기는 분노(憤怒)하는 이야기이고, 연민(憐憫)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고 또 회의(懷疑)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이 전에는 그냥 무심히 보아 넘겼었는데 이 글을 시작하면서 살펴보니 비둘기만큼이나 그 번식력이 왕성한 동물 중에 하나다 하고 그렇게 생각이 미친다.

예전에는 가끔씩 한두 마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외진 곳을 찾아서 숨어들었는데 요즘은 아예 떼를 지어 사람의 기척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그냥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

이제 그들은 생선가계를 지켜 쥐를 쫓아주는 파수(把守)꾼은 정녕(丁寧) 아니고 아마도 그들은 가계의 생선들을 훔쳐가는 도둑떼로 바꿈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리고 있었듯이 물론 전부는 아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우리 백성들은 청계천의 변화 같은 역사(役事)에 감지덕지(感之德之)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경제문제 같은 먹고사는 어려움에 미혹(迷惑)되어, 한풀이하듯 그렇게 투표하고 대통령을 뽑았다.

대통령직이란 헌법적 절차와 그 의미에 따라서 항상 백성들의 가슴에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간직되어 왔었으며 우리 헌법이 지금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개정되면서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모두 그러한 의미로 백성들의 마음에 각인(刻印)되어 있었다.

지독한 독재자 시절에도 그 문제는 그랬다. 그냥 당선자라는 초기 유진오 헌법초안에서부터 제헌헌법으로 그렇게 유지되어 온 것은 그 문제가 국사(國事)에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건(件)은 아니었기 때문이었겠다.

인(人)의 서툴음과 자(者)의 보편성을 왜곡(歪曲)하고, 자(者)라는 언어 표현이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것이라 하여 당선인으로의 호칭을 언론에 요청하였다 하는 그 기발한 염량세태(炎凉世態)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그 아세(阿世)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대통령 주위에 생성(生成)되는 고양이 떼들의 발호(跋扈)를 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국가 권력이 역사기록을 신화화(神話化) 해서는 안 됨을 지적한다. 이 조국의 우리 시민사회는 이제 계몽이 필요한 중우집단(衆愚集團)은 아닌 것이다.

정치인, 그들보다도 앞서 가고 있는 것이 백성들의 정치의식 수준이다. 무언(無言)은 항변(抗辯)의 표시였고 무질서 속에서 갖고 있는 질서의 철학을 백성들은 전통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당(唐)의 태종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백성을 먼저 생각하라 ·더 크게 귀를 열어라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라 ·스스로를 경계하라 그런다. 백성의 안녕이 국가의 근본이고 국력의 원천임을 그는 수(隋) 양제의 교훈에서 익힌 것이다.

흔히 우리의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서만 발언하고 자신의 교만의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변하지 못하는 행태다. 민중들은 웃음을 잃어버린 작금(昨今)의 세태(世態)속에서도 그들 정치인들의 웃음에서는 부드러운 미소(微笑)는 구경할 수가 없다.

미소를 가장한 자만에 가득 찬 비소(誹笑)는 어쩌면 백성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이 간직한 가슴의 표정이다. 지난 일 년 간 또는 그 전의 모든 그들 정치인들에게서 우리가 봐왔었던 오만(傲慢)의 극치(極致)는 그들이 백성을 우습게 본 그것이다.

그들의 국회 청문회가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는 증표(證票)인 것이다. 질문하는 그들이나 대답하는 그들이나 초록(草綠)이 동색(同色)임을 어쩌랴.

어느 구청의 하급공무원은 불우한 불구인 들의 지원금을 착복하여 자신의 고양이 밥상을 차렸고 어느 권부(權府)의 전전(前前) 실장님은 이 조국의 예산을 제집의 금고마냥 착각하여 정인(情人)과의 정분(情分)으로 날렸고 또 어느 부처의 장관을 비롯한 고위직 관리들은 무슨 스승의 날이던가 그런 날 모교를 찾아가는 여비에 보탰는데 장관님은 이천만원, 차관님은 일천만원, 실국장님은 오백만원 그런 식이였다.

참 걸신(乞神)들린 그런 모습들이다. 끝이 없다. 한심하다 못해 화가 난다. 그들은 가끔씩 재미삼아 전철도 타보고 버스도 타 보는 잔꾀도 생각해 내지만 시내버스 구간요금을 70원으로 기억한다. 그들 부자 출신들이 어찌 민생(民生)을 안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이미 그들을 실감(實感)한다.

그들의 전해진 어록(語錄)은 더 가관(可觀)이다.
땅을 사랑하므로 땅 투기에 참여했고, 배우자가 암 인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축하하는 뜻으로 오피스텔을 사 주었더니 2주택이 되었더라. 농촌 땅 사주는 도시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어느 장관 후보자, 그 독특한 상상력의 발상과 낭만적 정신의 소유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추 먹고 맴맴 우리의 정신이 돈다.

정부 산하기관, 공공기관, 국영기업의 주변에도 고양이 떼의 성찬(盛饌)은 있다.
거기 낙하산 인사가 그렇고 소통 없는 대화의 장마철 무더위 닮은 짜증이 그렇다.

역사는 옛이야기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때 거기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어떻게 기억 하는가 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이 바라 본 내일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잣대다.

태공이 말한다. "참외 밭에서 신 끈을 고쳐 매지 말고 배나무 밑에서 갓 끈을 고쳐 매지 말라. 사람들에게 의심 받을 가 두렵다."

태공왈(太公曰)「과전(瓜田)에 불납리(不納履)요 이하(梨下)에 부정관(不正冠)이니라.」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던가? 까마귀 날자 배(梨)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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