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의 애향 철학을 만들어가는 우수복씨

우 수 복 씨안천면 삼락리 출신(주)정든식품 대표재수원전북도민회 수석부회장재경안천면향우회장재경진안군민회 이사“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소망이 아니고 필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의 애향의 철학을 갖고 있겠지만 오늘 만난 우수복씨의 그것은 좀 더 남다른데가 있었다.고향을 떠나는 방법에서부터 그러했다.흔하게 우리 인간에게는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각기 다른 의미로 구분지어지는 것이 통상이다.그런데 이사람 우수복씨는 그것의 구분이 없이 객관성과 주관성의 테두리 없이 둘이 합하여 하나의 인간형을 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얼핏 보기에 그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러나 함께 지나다보면 흔하게 자신의 이론을 양보할 줄도 알았고 심하게 논리의 차이점이 있는 상대에게도 곧잘 타협의 여지도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문득 가슴에서 머리로의 짧고도 긴 여행길에 나선 ‘루타 데 돈기호테(Ruta de don Quijote)’의 기사편력을 보는 것도 같다.우수복씨 1953년 2월 15일생단양 우씨 안동공파 30대손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19세때) 6녀1남중 세째로서의 그의 집안 가장역으로 82세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그의 고향 장등부락이 용담호에 수몰되어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으로서의 그의 견해는 또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 다른 실향민과의 다른 것이여서 그의 앞서는 인간형의 형성을 엿보게 하였다.“용담댐으로 인한 고향의 수몰은 필연적인 것이며 막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기왕 그런것이라면 용담댐으로 인한 우리의 잇점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우수복씨 그에게 다시 물었다.출향의 계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고향을 떠났는가를 물어보는 필자에게 그는 그 특유의 그 표정과 그 웃음을 보이며 한참이나 있었다.“당시 무척이나 따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추석을 막 지내고 고향을 찾아왔던 친구들은 모두 떠났는데 공부하기는 싫고, 그래서 친구따라 무작정 고향집을 떠났습니다.”공부하기 싫어서 친구따라 그냥 무작정 고향을 떠난 이 남자 우수복씨.1977년 10월의 일이다. 그리고 당시의 이리에 이른다. 몇년간인가 한 제과회서 일했다.이리역 폭발사건을 겪고 갑자기 그곳이 싫어졌다. 다시 친구따라 강남가는 마음으로 친구를 따라서 상경길에 오른다.수원에 정착한 우수복씨는 이후 노점상을 이끌며 철따라 과일과 과자 등 때로는 노점으로 때로는 행상으로 오늘의 그가 서 있어야 하는 그자리를 매김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편력을 반복한다.그것은 저돌적 인간유형의 상징인 돈키호테의 편력과 흡사한 그런 것이었다.양떼를 백만대군으로 착각하여 돌격한다. 비를 피해 놋대야 쓴 이발사를 투구 쓴 기사라고 공격한다. 풍차를 흉악한 거인이라고 달겨든다. 길가는 수도사를 납치범으로 응징한다.시대를 초월하여 17세기적 그 이야기들이 21세기 오늘 우리의 우수복씨에게서 깨닫게 되는 것은 그가 갖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해석하는 의미를 달리하여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는 해학적 현실주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우수복씨. 그는 지금 우리의 고전 식품인 ‘전병과자’의 1인자임을 자처한다. 오늘의 일인자가 되기까지 우수복씨 그는 정말 수 많은 시행착오와 시련의 반복으로 점철된 지나간 세월들을 되새기고 있었다.노점과 행상으로 자신의 현 위치의 자리매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과회사의 직원과 공원으로 전전하여 하나식품, 정식품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1983년에는 연간 매출 20억의 당시로서는 이 계통의 기적을 이루어 낸다.‘루타 데 돈키호테’가 무작정 집을 떠나 ‘로시난떼’로 방향을 잡는대로 정처없이 가는 것은 한가지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정신 그것이 우리의 우수복씨 그의 유사점이며 풍차를 보고 거인으로 여겨 돌진하는 모습은 지금 원칙주의자로 우수복씨가 갖고 있는 현실 불타협 그 원칙임을 우리는 음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루타 데 돈키호테’가 구원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서 고행을 거듭하였거니와 우리의 우수복씨 그도 발안디 ‘둘시네아’ 홍인정씨를 만나서 고행의 종지부를 그의 가슴에 찍었다. 그리고 오늘 그들 내외는 고향 진안의 변하여 가는 모습에도 슬퍼하기나 부정하지 아니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애향의 철학을 만들어가고 있다.그는 얼마전 수원에 ‘용담호 민물매운탕’ 집을 열었다.라이브 카페식 인테리어에 진안식 음식의 모델을 개발하여 진안의 명물을 만들어 가겠다는 우수복씨의 집념은 대단하였다. 이제 머지 않아 ‘진안식 용담호 민물매운탕’의 시대가 수도권 전역에 맛 보일것을 그는 다짐하고 있었다.☎ 016-935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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