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단 일기

▲ 허영주 선생님
방과 후에 우리 반 말썽꾸러기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이혼할 때도 나한테 한 마디 안하고, 멀리 이사 가는데도 나만 모르고, 화가 나서 죽겠어요."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반나절 외출 후에 돌아오면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이던 제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녀석 머리에 덧셈, 뺄셈이나 가르치고, 바른 자세나 강요하다니!'
참으로 저는 못난 교사입니다. 제 딸아이였다면 번쩍 안아 쓰다듬어주고 마음을 먼저 달래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들 문제로 한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또 왜 그러는 걸까요? 선생님, 어떻게든지 고쳐야지요. 죄송해요."
전화기 너머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울고 계셨겠지요.

"교실은 공동체인데, **만 특별 대우할 순 없지요. 어머니께서 이해해 주시니 원칙대로 해볼게요. 꼭 고쳐질 수 있을 거예요. 좋아질 거예요."
소위 선생이라는 제가 위로랍시고 한 말이랍니다.

'교실 공동체니, 특별대우니, 원칙이니 하는 말은 왜 했을까?'
아들 걱정에 애간장이 녹았을 어머니의 마음에 오히려 상처를 준 것 같아, 퇴근 길 차 안에서 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아니다. 괜찮다. 지금 그대로의 **도 좋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좋아집니다."라고 응원이나 해 줄 것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다시 교단에 선 저는 시시콜콜 잔소리만 늘었습니다. 책걸상의 높이 맞춰라, 락스 물에 담긴 걸레 절대 만지지 마라, 환기시키게 창문 좀 열어라, 키 안 큰다, 바르게 앉아라, 잔소리 또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를 잡아놓고 가르치다가, 쌈닭처럼 자꾸만 싸우는 아이를 혼내다가도,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가도, 짧은 일기 글을 읽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핑핑 돕니다.
저는 잔소리장이 울보 선생님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럴 때마다 이제야 제법 선생님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말입니다.

허 영 주 교사
진안 중앙초등학교에서 꼬물꼬물 말썽꺼리만을 찾아다니는 2학년 학생들의 담임교사로 경력이 10년이 넘었으니 누군가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것이 이제는 익숙하기도 하련만 아직도 어색한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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