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지역 동학혁명협의체의 태동을 제안하며
진안지역 동학혁명협의체의 태동을 제안하며
  • 디지털 진안일보
  • 승인 2004.05.21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갑오년(1894) 한 해는 우리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획을 그은 시기였다. 그 첫째는 민중의 자주와 자존이 세상을 향해 성큼 다가선 역사 초유의 동학농민혁명이었고 다음은 갑오개혁이라는 근대사의 시작이다. 봉건과 인습이 역사적 굴레에서 점차 벗겨지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보는 세상이 어렴풋이나마 열리게 된 기로였던 것이다. 근래 광주민주화운동이나 4.19혁명은 모두 그 명예와 신원이 회복되었고 관련 근거법으로 공식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난 2월 국회 과거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통과된 『동학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 마련되어 정읍지역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등 동학농민에 연관이 있거나 역사적 자취가 있는 지역은 협의회 구성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무진장 산간부에서도 진안지역에 얽힌 동학농민전쟁 관련 사실이 밝혀져 호남서부 해안과 평야 지역만이 동학농민전쟁의 현장이라고 여겨졌던 기존의 관념을 탈피하는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2년 10월 21일 김태식 의원 등이 발의한 「동학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 올해 2월 국회에서 통과되어 110년만에 바야흐로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공식 규정되어 역사의 정의 앞에 우뚝 서게 되었다. 법안의 제안이유로는, 1894년에 전국적 규모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보국안민의 기치 아래 부패척결과 신분제도의 타파 및 일제의 국권침탈에 무력으로 맞서 싸우는 등 반봉건·반외세의 근대민족운동이었으며,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나 동학농민혁명군과 그 유족들은 이에 상응하는 명예로운 예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시련을 겪어 이에 동학농민혁명군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발전시켜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한편, 동학농민혁명군과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민족정기의 회복과 진정한 민초들의 숭고한 정신이 역사의 진실적인 평가를 받는 필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즈음에 동학민족통일회(대표의장 신덕순)는 동학혁명군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통과를 열렬히 환영하며 동학 혁명군의 혁명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자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번 사업추진과 관련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동학혁명유족회 류윤근 상임이사(서울교구 순회교사)는 본 특별법이 통과되기까지 동학혁명군의 유가족 여러분과 관련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의 노력이 결정적이었음을 강조하며 실로 100여 년만에 국가에 의하여 동학혁명군의 명예가 회복되면서 동학혁명 정신이 우리 근 현대사에 중심으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동학민족통일회가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동학혁명은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기치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삶의 틀인 “다시 개벽”의 정신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탄이였다고 말하면서 그 정신은 조선말 의병항쟁과 3.1만세운동으로 계승 발전되었고 나아가 조국광복을 위하여 싸운 독립군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투쟁의 원동력이었으며 1970, 80년대의 반독재 운동의 정신으로 면면이 이어져 이 시대 우리가 지키고 선창해야 할 소중한 가치관으로 자리매김되었고, 안으로는 조선왕조의 학정과 부패관리의 횡포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밖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고자 귀중한 인명과 재산을 민족의 제단에 받쳤던 동학혁명군의 장거가 110여 년만에 국가로부터 공인받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동학혁명이 인간 중심적인 평등사상에 기초한 이 시대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동학사상의 사회 참여적 실현임을 주장하고 동학혁명의 정신이 21세기 물질적 풍요 속에 나타나고 있는 윤리도덕의 타락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동학혁명의 정신이 정파간 정쟁, 집단간 갈등, 세대간 격차, 지역간 대립을 치유할 수 있는 시대이념이며 민족이질화 현상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 조국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공고화할 수 있는 민족 대통합 이념임을 천명(闡明)한 바 있다. 각 지역마다 동학과 관련한 역사적 흔적의 발굴과 고증, 선양을 위한 협의회 구성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데 진안지역 또한 동학농민전쟁 등 역사적인 현장임이 밝혀져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협의체구성이 절실하게 기대되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과 진안문화원이 추진한 ‘진안지역의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에서는 진안지역에서의 동학농민혁명, 의병운동, 3.1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이번 학술조사의 수행연구원으로 참여한 한국미술협회 진안지부 이용엽(李容燁) 지부장은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사실로서 녹두장군 전봉준의 백운면 남계리 오정마을 서당 훈장설, 농민혁명 주요 인물들이 진안출신인 점, 녹두장군의 장녀 전옥례(全玉禮 당시 15세) 여사의 마이산 금당사 은거, 전북지역 최초의 對일본군 전투인 정천 상조림 전투, 당시 용담현의 농민군에 의한 함락 등 동학혁명의 발단부터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하는 중요한 단서를 발굴한 바 있다. 전봉준 장군이 오정리 ‘구름뜸 서당(속칭)’에 훈장으로 초빙되어 현지의 인물들을 규합하고 거사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진원지로서의 배경이었다는 점은 보다 심층 고증이 필요하겠지만 진안지역의 상징성을 한층 부각시키는 데에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고래로 호남은 한반도의 문화와 풍물, 경제의 발상지였고 특히 진안을 비롯한 호남의 동부산간부는 호국의 요새 지역으로서 산과 물의 형세에 걸맞게 역동적인 기상의 발원지였던 엄숙한 사실을 자긍으로 삼아 후대의 분발과 결속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방자치 민의(民意)시대의 진정한 태동을 위해 새로이 출발점을 그어야 할 것을 고대한다. * 가보(甲午)세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병신(丙申)되면 못가보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