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리’
박선진 <소설가·주천면 무릉리>

우리는 흔히 새가 내는 소리를 운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것을 노래한다고 표현한다며 이것이 동서양의 정서의 차이라고 가르쳤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 정서의 차이는 역사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그 역사는 안타깝게도 삶의 빈부 격차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기억나는데 요즈음 우리 곁에 사는 새들은 누가 뭐래도 노래를 부른다. 여간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느낄 것이다. 봄이기 때문이다. 봄은 사람에게도 새들에게도 사랑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자연스럽게 놓아버린 취미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을 찾아서 듣지 않게 된 것이다. 문만 열면 새의 노래를 비롯해서 바람과 나무의 이중주, 풀들과 개울물의 합창, 달과 태양의 솔로, 별과 구름이 만들어 내는 온갖 음악 속에 가끔씩 논밭의 기계음도 랩처럼 중장비의 소음도 헤드락으로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도시에 가면 온갖 것들이 더는 도시에 살 수 없음을 깨우쳐 주는데 탁한 공기나 복잡한 모둠같은 것은 제쳐두고 첫 번째로 밀어내는 게 소음이다. 대형마트나 길거리의 매대에서 울려나오는 음악들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그것들은 구매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독촉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반작용으로 오래전에 즐겨들었던 음률들이 불현듯 그리워지곤 한다. 그리고 이런 그리움은 읍내에 나오면 아쉬움을 낳는다.

자주 '문화의 집'에 들르곤 하는데 건물 안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게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귀에 익은 선율들이 그것이다. 밋밋한 기분으로 오다가도 가슴이 조용히 설레게 되는데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마져 들게 한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여전히 음악은 이어지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보인다. '문화의 집' 자체가 딱딱한 행정업무나 보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얻은 만족감은 다른 곳에서 아쉬움을 갖게 한다.

군청의 느티나무가 요즘 들어 더욱 아름다워지고 눈이 부시다. 지나가며 올려다보면 열정과 건강이 깃든 젊음을 보는 듯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 앞에 정자에는 늘 누군가 있어 좋은 그림을 그려주는데 민원실에 들어가니 잔잔한 음악이 있다. 그러나 민원실을 나오면서 문득 군청 로비에서도 계단을 내려와 느티나무 아래 저 정자에서도 그 음악을 계속 잔잔하게 들을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싶어진다. 요즘은 컴퓨터가 있어 선곡을 위해 누군가 많이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인데 - 싶으면서 말이다. 혹시 아는가? 식식대며 민원실을 향하던 뚜껑열린 민원인 귀에 얼결에 잡힌 선율 하나가 열린 뚜껑의 김을 좀 식혀 줄지.

이 아쉬움은 우체국 안의 휴게실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읍사무소에서도, 문화원에서도 여전히 남았다. 시골에서 요즘은 농번기라 이런 여유를 즐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인생을 바꾸는 계기는 뜻밖에 큰 사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밤중에 눈이 떠져 방문 밖으로 나와 올려다 본 하늘의 별에서 만난 신도 있을 것이고, 노정기씨는 순서를 기다리던 이발소에서 읽을거리를 찾다 찢어진 신문조각에서 진안의 기사를 읽고 초기 간사로 진안으로 와 살고 있다.

중앙초등학교 옆에 하수처리장은 읍내에서 아는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휴식공간이다. 언젠가는 영양 많은 (?) 하수를 먹고 크게 자란 부레옥잠들을 가져다 집집마다 키우기도 한 그곳에도 음악이 있으면 참 좋겠다. 전에 나처럼 이런 여인이 있어 신청을 하면 틀어주기는 했다는데 덕분에 좋은 시간을 즐겼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몰랐는지 요즘은 그곳도 조용하단다. 아차, 그러면 정화수초들이 너무 자라 버리려나?

나 어릴 적엔 학교에 들어서면 언제나 행진곡을 비롯한 음악이 울렸다.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걸음도 빨라지고 경쾌한 음악소리는 나를 환영하는 소리 같아서 가슴이 뛰곤 했다. 군청을 중심으로 한 그 거리엔 아이들을 비롯해 사람의 통행이 있는 곳이니 조용한 시골의 정취도 좋지만 음악이 늘 흐른다면 우리진안이 가보지 않은 오스트리아의 비인처럼 이미지화 되지 않을까 꿈꾸어 본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니 거기 계신 분들도 함께 꿈을 꾸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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