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구자인 진안군청 마을만들기 지원팀장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도시화로 많은 분들이 농촌을 떠났다. 머리에 짐 보따리 이고 아이들 손잡고 떠났다. 그리고는 고향의 부모님이나 친지가 있어도 일년에 몇 번 명절 때나 찾아오는 고향이 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마을이 송두리째 없어진 분들은 그나마도 찾기 힘든 진안이 되었다.

7~80년대에 도시로 나간 분들에게 고향 마을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가혹한 육체노동의 장소로 기억된다. 동시에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었지만 마음을 나누던 친구가 있고 인심이 살아있던,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픈 추억의 공간으로도 기억된다. 하지만 한번 떠난 고향은 다시 돌아가기 힘든 곳이다.

도시에 나가 꼭 성공해야 한다고 '소 팔고 논 팔아' 공부시키고 결혼과 사업자금까지 지원한 것이 농촌 부모님이었다. 보란 듯이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고향 농촌에 돌아가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뭔가 실패해서 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고, 게다가 고향 부모님 기대를 저버린 것처럼 느끼는 탓도 크다. 그래서 '정들면 고향'이란 노랫말로 위안을 삼으며 도시에 주저앉는 경우가 더 많다.

옛말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자손이 가난해지면 선산의 나무까지 팔아 버려 줄기가 굽어 쓸모없는 것만 남게 된다. 그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굽은 나무가 고향 선산을 외롭게 지키면서 조상 묘와 말벗도 되고 오히려 제 구실을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말은 도시화 시절의 우리 모습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우리 부모님들은 똑똑하고 공부 잘하던 자식은 도시로 내보내고 농사나 지을 자식은 곁에 두었다. 하지만 도시로 보내 뒷바라지 열심히 해준 자식은 일 년에 몇 번 얼굴만 볼 수 있을 정도고 공부 안 시킨 자식이 오히려 노후를 보살펴주고 무덤을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 옛말에 틀린 말이 없다고 했던가.

사람이란 자고로 땅에 뿌리붙이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랑초(浮浪草) 인생'이란 이리저리 떠도는 비참한 인생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빠른 도시화 시대를 겪었고, 또 지금도 이사를 자주 하며 어느 땅에도 쉽게 정을 주지 않는 불안한 위기사회다. 이처럼 뿌리가 크게 흔들린 사회, 땅에 뿌리내린 삶을 가볍게 보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농촌마을의 가치가 천시될 수밖에 없다.
 
GO! 鄕,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삶
올해도 한여름 농한기와 휴가철에 맞추어 마을축제가 개최된다. 외부에서 참가를 기대하는 1순위는 고향을 떠난 가족, 친지로 잡혔다. 그래서 축제 슬로건도 "GO! 鄕,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삶"으로 정해졌다. 슬로건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Go!'는 도시 사는 향우회분이나 귀농귀촌 희망자들에게 '여름휴가철에 농촌 고향으로 가자'는 의미를 영문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다. '鄕'은 한자 풀이로 보자면 '마을과 마을이 서로 마주하여 길이 통하다'의 뜻을 담고 있으며 그 자체로 마을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가운데 한자(白+匕)는 음식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 한다.

영어의 'Go'와 한자의 '鄕'을 합쳐 '고향'이라 발음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번 축제의 주된 손님으로 생각하는 향우회 분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모든 도시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는 농촌마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뿌리'라는 것도 모두의 고향이고 뿌리가 되는 '마을'을 의미한다.

그래서 올해 슬로건은 진안의 뿌리를 지키고 있는 주민이 주인공이 되어 여름 농한기(휴가철)에 뿌리(고향)를 떠난 향우회분들과 농촌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려는 귀농귀촌인을 초대하여 서로의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농촌 마을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번 축제가 우리 모두에게 '농촌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는 취지에 공감하고, '도시가 꽃이라면 농촌은 뿌리'라는 관계를 이해하고,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마을 주민도, 고향 방문한 분도, 또 귀농귀촌 하신 분도 모두 한자리에 모여 지난 20세기의 광풍 같았던 도시화시기를 되돌아보며 우리 모두의 고향인 마을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발전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