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에서 만난 사람-내 이름은 석점례
진안읍에서 꽃을 가꾸며 여생을 보내는 석점례 할머니의 삶

▲ 석점례 할머니
뭉툭한 손가락. 영락없이 짜리몽땅 '조선손'이다. 그 붉고 거친 손이 지난 시간을 알려준다. 흙이 잔뜩 묻은 채로 젖은 땅에서 풀을 뽑는 할머니. 석·점·례. 틀니도 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한다.

그녀의 이름은 석점례(89). 허리가 아파죽겠다며 몸빼를 추켜세우고 나무 대문 안으로 총총 사라진다.
"뭐할라고 내. 그거 내서 뭐할라고." 연신 인터뷰를 거절할 듯하다 또 배시시 웃는다. 아흔이 다 된 나이지만 눈에 총명함이 담겨있다.

15살에 단양리에서 시집 와 내내 진안읍에서 살았다. 시집이 뭔지도 몰랐다. 젊은 남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다. 늘 지게를 지고 다녔다. 시댁 사람들 모두 착한 이들이었다. 할머니는 그 작은 몸에 자식 열둘을 낳았다.

하나는 이레도 안 지나서, 다른 하나는 다 커서 사고를 당했다. 모두 제비 새끼처럼 귀여운 순둥이들이었는데, 먼저 간 아들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인생이 고목처럼 변해가는 느낌. 할머니는 갑절 늙어버렸다. 며느리와 아들이 효자, 효부다.

얼마나 잘 대해주면 '징그럽게'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모두 '아바이' 덕분이란다. 아바이의 피가 순해, 아들 피도 착하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초가지붕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진안읍은 이제 많이 변했다. 그이는 계속 "기억이 안 나, 아무것도 몰라."라고 말을 한다.

기억이, 시간이 사그라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그이는 소원이란 것이 없단다. 젊은 시절엔 바람도 많았지만 늘그막한 지금, 오로지 꽃에만 매달리고 있다. 꽃은 석 할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볼 때마다 석 할머니는 고향을, 자신을 생각한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나보고 그래. 저 냥반이 죽으면 꽃밭에 묻어줘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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