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면 와룡리 구미동에서 양봉하는 서명덕 씨

▲ 서명덕씨
꿀벌이 윙윙대는 소리는 나른했다. 적막한 구미동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나무그늘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 양봉업자 서명덕(58)씨. 구미동의 로빈슨 크루소다. 정신없이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보기엔 어리둥절할 풍경.

경상도 안동이 고향인 서씨가 양봉업자가 된 건 1년 전이다. 가족을 등지고 전국 산천을 떠도는 그이는 꿀벌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강원도 정평과 경상도 구미의 산에 들어가 벌통을 깔았다. 주로 아카시아꿀을 땄지만 진안에서는 때죽나무 꿀을 채취한다.

텐트 속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는 터라 심심할 법도 하다. 여름이지만 밤이면 입김이 날 정도로 춥다. 전기를 끌어와 냉장고를 사용했다. 계곡물을 받아 쌀도 씻고 찬물로 수염도 깎는다. 졸졸 흐르는 물은 티 없이 맑아 서씨의 얼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손이 시리다.

벌에 쏘이는 날도 많다. 벌은 침을 쏘고 나면 며칠 못 가 죽고 만다. 벌침이 관절염 등 몸에 좋다는 풍설이 있지만 쏘일 땐 아프다. 숲 속의 나날은 한가하지만 간간 따끔한 일상이 펼쳐지는 셈이다. 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인생 같다. 욕망을 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할까. 단물쓴물 다 들이키는 게 삶이고, 인생의 끝자락은 결국 죽음이다.

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역시 궁금한 건 로열젤리. 로열젤리는 여왕벌이 먹고 7년을 산다고 한다. 장수벌이다. 여왕벌은 일벌들이 받아온 꿀을 따복따복 먹으며 하루 종일 게으르게 놀지만 '종족보존'의 역할을 다한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불평등해 보이는 건 당연.

하지만 1인자에게 복종하며 무리지어 사는 벌 세계에선 당연한 질서다. 자연에서 이 꽃 저 꽃을 찾아다니는 그이의 벌이 단맛에 길들여진 대형농장의 벌들과 사뭇 다른 이유다. 그만큼 꽃도 열매도 벌도 건강하다. 환경오염 때문에 벌들이 사라지고 있죠, 라고 묻는 순간, 이마를 찌르는 통쾌한 한 방. 글을 쓰는 이도 쏘였다.
"로열젤리에 단백질이 들어가 사람들이 좋아해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과학이 풀어내지 못한 신비함을 말하며 그는 냉동실에 보관된 로열젤리를 보여준다. 노르스름한 액체가 굳었다. 인생의 절정이 있다면 로열젤리를 닮았을 터다. 그이는 며칠 후면 떠날 거란다. 벌통과 꿀벌들을 모아 트럭에 싣고. 목적지는 다시 강원도. 반복하는 유목생활이 그이를 기다린다. 그 곳의 야인생활은 또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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