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불망비 민족문제연구소로

▲ 민족문제연구소 직원들이 비석을 분리하고 있다.

부귀면에 있던 '윤치호 불망비' 2점을 민족문제연구소로 옮겼다.

부귀면과 부귀초등학교는 학교 안에 80년 넘게 방치되어 온 '윤치호불망비' 2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했다.

윤치호불망비 중 한 점은 일제강점기 대지주였던 윤치호가 부귀면 오룡리·봉암리·방각리(현 황금리) 세 마을의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주면서 소작인들이 1929년에 세웠다.

또다른 한 점은 부귀초등학교 건립 터를 제공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감사의 의미로 1931년에 세웠던 것이다. 문제의 비석 2점은 모두 높이 135센티, 넓이 54센티고, 갓은 99센티에 넓이 58센티다.

윤치호불망비로 부르는 이 비석은 부귀초등학교 정문 옆 왼쪽 담장 아래에 2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 비석은 오랫동안 비바람에 씻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도 비석에 대한 유래를 잘 모르고 있어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였다.

한 주민은 "오래전부터 초등학교 터 기증자가 친일파라는 건 알았는데,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 (비석을)찾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학교에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 비석의 존재를 확인한 민족문제연구소는 부귀면과 부귀초등학교에 비석의 기증을 요청했다. 이 같은 요청에 부귀면과 부귀초등학교는 두 차례에 걸친 지역 기관장 회의를 통해 기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2일,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망치로 기초석을 깨고 크레인 차량을 이용해 비석 두 점을 분리해 가져갔다.

이날 현장에 나온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현재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친일인명사전을 발간 중이다. 우리 단체에서는 역사자료관 건립운동까지 벌이고 있다."라며 "친일과 관련한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데 이 비석은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부귀초등학교 양재근 교장은 "윤치호에 관해 이번 기회에 많은 부분을 알게 됐다."라며 "담장을 헐고 공원을 만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윤치호는 윤흥렬의 아들로 1865년에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남작의 지위를 받아 한일병탄 당시 윤치호에게 승계되었다. 신간회 105인 사건이 터질 무렵 체포돼 6년 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지만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변절해 '내선일체론' 즉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힘이 정의다', '일본과 한몸이 되는 것만이 살 길이다'라고 주장하며 친일로 돌아섰다. 윤치호는 기독교 지도자였고 애국가의 작사가로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친일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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