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읍내에서 폐지 모으며 사는 고인기·김인기 부부 이야기

▲ 고인기, 김인기 부부
그가 끄는 리어카 바퀴는 공기가 조금 빠졌다. 늙은이의 헐거운 종아리처럼. 일흔이 넘은 이 남자는 아내와 함께 걷는다. 아내는 쌍꺼풀 없는 조그마한 눈으로 오물조물 말한다. 저기를 더 가봅시다. 누군가가 상자를 버려뒀을지도 모르니.

고인기(71) 씨는 말을 하지 못한다. 듣지도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는 스스로와 이야기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길은 손가락뿐이다. 그는 폐지를 줍는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은다. 아내 김순례(59)씨와 함께. 아내는 세 살 먹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그에게 왔다. 고 씨에게도 이미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었다. 아내의 전 남편은 자살했다.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수가 준 밥그릇에 농약을 붓고. 아내는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전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빚잔치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열세 살부터 순례 씨는 대구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한 달에 700원을 받았다. 그 집 아이들은 주전부리가 심했다. 먹을 것을 보면 정신이 없었다. 조금만 먹고도 금세 질렸다. 달걀을 무척 좋아했다. 그걸 삶아 먹는다고 수십 개를 깼다. 핑계를 순례 씨에게 돌렸다. 일곱 해 만에 나왔다. 달걀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 등쌀이 심했다. 식당에서 그릇을 씻고 여관에서 방 닦고 이불을 빨았다.

아내는 사람들과 잘 싸운다. 공공근로라도 할 치라면 인부들과 꼭 마찰이 있었다. 풀을 뽑다가도 함께 일하는 그들에게 꼬박꼬박 잔소리를 해댔다. 며칠 못 가 쫓겨나기 일쑤였다. 아내가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다투는 상대는 보이지 않고 '세상'이 보였다. 세상과 한바탕 질펀하게 씨름하듯 싸웠다. 그 실체는 가난이었고, 사람을 모욕하는 노동이었다.

마음이 후들거렸다. 왜 우리는 돈이 없나. 우리는 왜 집이 없나. 그는 입버릇처럼 아내에게 말한다. 집을 갖고 싶다고. 남들은 작은 집이라도 한 채 있는데 우리는 없다고. 비좁지만 두 몸뚱이 눕힐 집. 겨울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는 방바닥과 보송한 이불을 덮고 잠들고 싶다고.

아내는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 당뇨 때문에 몸이 자주 붇는다. 아내 순례씨는 인기씨에게 종종 말한다. 세상 어딜 가든 내가 아름다우면 빛이 난다고. 정말 그럴까? 인기씨는 순례씨의 말을 잘 모르겠다. 이 서늘한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지. 추레한 옷차림의 우리들이 어떻게 빛이 날 수 있냐고. 순례 씨는 그 질문에 대답한다. "사람이 사람다우면 되거든."

그들은 '까막눈'이다. 글자를 모른다. 그래도 서로의 눈빛을 보면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폐지 줍는 일은 둘이 함께 일할 수 있어 좋다. 온종일 돌아다닌 달에는 60만 원씩 벌 때도 있으니까. 비 오는 날이면 창밖을 보며 한가롭게 쉬면 된다. 두 목숨만 이어갈 수 있다면 그 걸로 괜찮다. 그들은 군에서 한 달에 기초생활수급비로 40만 원씩을 받는다.

부부의 고향은 진안. 리어카 바퀴를 밀어도, 집이 없어도 고향이 조금은 아늑하기만 한 걸. 인기씨는 쏟아진 스티로폼 조각을 주섬주섬 봉지에 밀어 넣으며 씩 웃는다. 그 웃음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폐지 모으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아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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