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98 용담면 송풍리 감동마을

▲ 감동마을 전경
아침부터 내리쬐는 뙤약볕이 뜨겁기만 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마며 콧잔등엔 어느새 땀이 맺힌다. 입에서는 '덥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전날, 마을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기원 이장과 약속을 하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감동마을로 향했다. 8월 18일 찾은 감동마을. 새벽일을 마치고 더위를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인지, 마을엔 다니는 사람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마을의 고요함을 뒤로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한번 휘~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 앞 유유히 흐르는 감동천을 따라 가니 농촌전통테마마을센터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초가를 얹어 놓은 정자와 커다란 물레방아가 보인다. 물레방아는 계곡에 세워져 있을 뿐 돌아가지는 않는다. 아마도 감동마을을 찾는 체험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듯싶다.
 

▲ 김복동 할아버지
감나무가 많아 감동마을
감동마을은 용담면 송풍리 감동과 뒤띠기를 합한 행정리 명으로 예전부터 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산 여기저기엔 감나무가 많단다. 또한, 고요하고 아늑한 금강과 지장산이 품고 있는 작고 소박한 마을로 2006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다.

이날 김기원 이장은 감동마을의 역사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김복동(78세, 노인 회장)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감동마을은 1690년경 경주김씨 세 가구가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겼다. 김복동 할아버지는 "김정립이라는 사람이 마을을 만든 개척자"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엔 시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 마을이름 개편이 한창일 무렵 감나무 등 유실수가 많아지자 감동(甘洞)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감동마을, "빌 터는 아냐"
"감동마을은 지금까지 총 두 번 불이 났었다."라고 김복동 할아버지는 운을 뗐다. 한번은 일제 강점기 말년 일본사람들에 의해 난 불이고 한번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6.25가 일어나고 인천상륙작전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지. 그때 공산당이 지장산으로 들어가서 밤에는 마을로 내려와 약탈을 했어. 용담이 수복되고 3개 군이 공산당을 잡으려고 감동마을 전체에 불을 놓았지."

그렇게 보상도 없이 터전을 잃은 마을 사람들. 하지만, 사람들은 다시 감동마을로 들어왔다. "마을에 화기가 있어 숲을 이루어야만 해. 그래도 금강이 흐르기 때문에 유리하지."

김복동 할아버지는 감동마을이 앞으로 인구가 많이 늘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빌 터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감동마을은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말일 게다.
 

▲ 김기원 이장
물 좋던 마을, 옛 우물 복원도
감동마을은 현재 17가구가 모여 산다. 하지만, 예전만해도 57~8가구가 살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20여 명이 됐던 마을이다. 또한, 감동마을은 물이 좋단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아이를 낳으려면 감동마을에 가서 낳아야 인물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동네 우물이 있었어요. 옛날만 해도 마을 사람들 모두 그 우물물을 받아쓸 정도로 깨끗하고 우물이 마르지 않았죠."

김기원 이장은 우물 복원 계획도 조심스레 밝혔다. 또한, 김 이장은 옛날만 해도 감동천은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했단다. 그래서 주말이면 사람들로 인해 강가에 텐트 칠 자리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용담댐 건설로 인해 녹조가 생겨 예전의 감동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테마가 있고 감동이 있는 마을
올해 감동마을은 천여 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이번 8월 초에 있었던 마을축제 기간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 돛단배도 타고 다양한 체험을 즐겼다.

현재 감동마을에는 마을회관과 농촌전통테마마을센터 외에 8개의 민박집도 함께 운영된다. 이 민박집은 원하는 마을주민에 한해서 각각의 집에 대한 특징을 담은 이름이 걸려있다. 이렇게 민박 등 체험 객들이 다녀간 후 창출되는 수익은 모두 마을기금으로 사용된다.

김기원 이장은 갈수록 마을주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주민들이 인식이 달라지는 만큼 마을의 화합과 정은 더 쌓이고 있다.

한편, 이날 테마마을에 대해 설명하는 중 김복동 할아버지는 체험 객들을 위한 화장실과 식수를 위한 음수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지장산 정상에 천마의 발자국 바위가 있어 마을에 태어날 장수를 위해 천마가 항상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감동마을, 작지만 소박하게 상대를 아낄 줄 알며, 함께 어울려 사는 마을, 감동마을은 이렇게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동을 주는 마을이었다.

▲ 용담 송풍리 감동마을

▲ 마을을 개척한 김정립을 모시는 제각 앞엔 임금으로부터 3대가 받은 벼슬(통정대부공조참의, 가선대부한성부자윤, 송정대부행동지중추부사)을 세긴 비가 세워져 있다.

▲ 용담 송풍리 감동마을 - 마을에 있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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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순임 씨
마을에서 만난 '순임'씨
주위에 감이 많아 감나무집이란다.(8개의 민박집 중 하나다.) 용담 송풍리에서 고개 넘어 내려오다 보면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집이다.

남편 유재영 씨는 사회단체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받고 나가고 아내 백순임 씨는 타지에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보낼 옥수수를 말리고 있었다. 이렇게 말린 옥수수를 끓여 먹으면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단다.

순임씨 그녀는 17살에 안천 구룡리에서 시집왔다. 밥 굶지 말라고 보낸 시집이었는데 와서 보니 친정보다 밥 굶기가 더했단다. 결혼하고 얼마 후 남편은 군대에 입대하고,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그녀는 5남매를 키웠다.

손님 왔다고 복숭아를 따와 바구니 한가득 내 놓는 순임씨,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에 그녀는 "이런 사람도 신문에 나오냐."라며 웃는다. 그러곤 사진을 다 찍고 카메라를 내려놓자 자세가 맘에 안 드는지 다시 한 번 찍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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