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을 잊지 못해 포기할 수 없어
부귀 한솔스튜디오 이판철 사진사

▲ 30년 전부터 이판철씨가 모아놓은 카메라.
사진관 건물에서 오래 묵은 먼지 내까지는 나지 않았다.
'사진관'이 아닌 '스튜디오'라고 적혀 있는 깨끗한 간판이 서운했지만 면 단위에서 보기 드문 사진관 광경에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사진사 이판철(47) 씨가 부귀면 '한솔스튜디오'의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사진에 빠져든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학교에 사진사가 사진기를 들고 오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어요."

주천면 운봉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시절 학교에 졸업앨범을 찍으러 온 사진사의 모습에 반했다. 그때부터 사진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진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서울에 올라가 사진관에서 일을 하면서 82년도에 사진사 자격증을 땄다.

"그때 종로구에서는 나 혼자 자격증 시험에 붙은 걸로 기억해요. 어린 나이에 힘들어도 돈을 벌면 카메라 사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지요. 카메라에 찍히는 이런저런 사진이 신기하기만 했어요."

그렇게 즐거운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손에 쥐기까지는 확인할 수 없어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자신의 비용을 들여 결혼식을 다시 올려 준 적도 있다.

"한 번은 결혼식 사진을 찍었는데 현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사진을 버린 적이 있었어요. 별수 있나. 사람들 모아서 결혼식을 다시 올렸지요."

옛날에는 수정 연필을 사포로 문질러서 빼쪽하게 만들어 수정할 부분에 사용했다. 20여 년 전, 흑백앨범은 전부 손으로 몇 날 며칠을 수정해서 만들어야 했다.

지금에서야 디지털카메라로 없는 사람도 만들어 넣을 수 있지만 그때는 수정작업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작년에서야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지만 카메라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눈치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으면 재미도 없고 내가 사진사가 아닌 것 같아요. 아기들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예쁜데 그걸 굳이 고치는지…. 옛날 돌 사진은 콧물 흘리고, 찡그리는 표정이 다 담겨 있는데 요즘 아이들 사진은 예쁘지 않은 사진이 없는 것 같아요."

컴퓨터로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사진에 그는 흥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옛날에는 카메라 렌즈 열고, 조리개, 셔터 속도, 플래시 조절하고, 필름도 넣다 뺐다. 상황에 따라 판단해서 전부 맞춰서 사진을 찍었지. 그 쇳덩이 같은 복잡한 사진기와 씨름하면서도 사진 찍는 순간은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했어요."

주천면에서 6년, 부귀면에서 11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번도 손님이 없을 때가 있다. 본업을 지키기 위해 7년 전부터 다른 일을 겸하고 있다.

"지금은 사진관이 필요 없을 정도예요. 시골에서 잔치도 안 하고 학교 선생님이 직접 아이들을 찍으니 졸업사진 일도 들어오지 않아요. 이제는 시골에서 먹고살게 아무것도 없어서 다른 지역에 가서 돈을 벌어요. 귀농인도 좋지만 지역사람들이 먹고살게 도와줘야지…."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가게를 세놓으면 수입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는 사진관을 그만두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 등이 땀에 젖어가며 빠져드는 순간을 잊지 못해 사진관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 순간 때문에 사진사라는 직업에 싫증을 느낄 수 없다.

30년 전부터 모아놓은 15대 카메라가 사진기 가방 속에 들어가 지금 방 한쪽에 쌓여 있다.
1940~50년에 생산한 카메라와 100년 가까이 된 필름 홀더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요즈음 자신의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고 있다.

"얼마나 웃긴지 몰라요.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풍경을 놓고 찍어도 개인마다 다른 사진을 찍거든요. 제각각인 사진이 얼마나 재밌는지, 구도도 다르고 포커스도 다르고 사진에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감정이 담겨있어요."

그는 이제야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의 자만으로 바라보며 평가하는 사진이 아닌 사진 속 주인공이 마음에 드는 사진이 정말 좋은 사진이라는 걸 최근에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옛날에 사무실 직원들끼리 사진 잘 나왔다고 감탄하고 있을 때 사진주인이 와서 사진이 이상하다며 핀잔을 늘어놓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 사람이 사진을 볼 줄 모르네.'라고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작 당사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데 전문가가 잘 나왔다고 하는 사진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요."

디지털카메라는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너무 빨리 변해버린 세상이 속상하다. 필름가방만 따로 메고 다녔던 그때가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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