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02 용담면 송풍리 방화마을
방화마을 유래를 듣기 위해 김부원(67) 씨를 만났다. 김부원 씨는 방화마을의 토박이로 비교적 마을의 옛 이야기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옹기·사기 그릇 나와
"제가 살던 곳은 저수지 안쪽으로 방하실입니다. 그땐 열 한집이 살고 있었죠."
김부원 씨는 1959년 송풍리 저수지 인가가 나면서 방하실 마을 사람들이 점촌으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송풍 저수지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69년도 준공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 씨의 말에 따르면 방하실 마을 사람들과 점촌 마을 사람들로 새롭게 구성된 방화마을은 처음엔 질서가 없었단다. 힘이 센 사람이 대장이요, 최고였다고 한다. 그러다 청년들을 위주로 한 자생 방범단체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삼오회' 삼강오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단다.
"마을에 이승로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마을의 틀을 바꿨다고 할 수 있죠. 한마디로 질서가 잡혔어요."
그 후 방화마을은 노온이나 회룡 마을 사람들이 이사 오고 싶어 하는 마을이 되었다고 김부원 씨는 말했다.
또한 김 씨는 점촌이 옹기점으로 옹기가 나왔다면 방하실은 금광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기점으로 저수지 물이 마르면 사기그릇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진안군향토문화백과사전에 따르면 '송풍리 방화 요지'라고 해서 용담면 송풍리 방화마을에 있는 요지로 방화마을 유종권 댁 건너 뒷산에 있는데 가마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퇴적층이 흩어진 언덕에서는 백자편과 도지미 등이 옹기편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수습되었고, 자연석을 이용하여 가마를 축조한 듯 몇 개의 자연석이 포개어진 채 유리질화 된 상태로 수습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화마을에는 50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나무가 마을 입구 도로변에 있었다. 하지만 정자나무는 고사했고 현재는 2000년도에 새로 심어진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정자나무 가지 하나가 죽어 있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 몇 명이 포크레인을 불러 나무 가지를 잘라달라고 했죠. 그런데 가지가 너무 많이 찢어졌어요. 그러고 나서 2달 후 정자나무가 죽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사고사, 병사 등으로 다 죽었습니다."
또한 어떤 마을 주민은 꿈속에서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정자나무 있던 자리에 서 있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마을의 김순만씨가 기증을 해서 나무를 새로 심었고 정자나무에서 모시던 제도 몇 년간 지내지 않다가 다시 지내게 되었습니다."
김부원 씨는 지금 정자나무도 무럭무럭 자란다며 아마도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 씨는 나무에 얽힌 이야기로 한국전쟁당시 나무에 총을 쏴서 나무에 눈물처럼 붉은 물이 흘렀다는 이야기와 회룡마을 한 아주머니가 나무껍질을 벗겨간 후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현재 방화마을은 산촌생태마을 조성이 한창이다. 문동일(49) 이장에 따르면 10월 말이면 완공될 것이라고 했다.
문동일 이장은 산촌생태마을은 "2007년도 10월 유치한 후 2008년 1월에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라며 "산촌생태마을은 휴양관, 약초재배단지, 약초체험관, 펜션, 황토방과 등산로로 만들어지며 방화마을 앞 산 66,116㎡(2만 평)에 걸쳐 조성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블루베리, 사과, 흑미 등 다양한 농산물도 심어 체험 객들에게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며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듯이 마을 사람들과 상의해 하나하나 잘 해결해서 끌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산촌생태마을 사업은 단일 사업이 아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되어야하며 마을사람들이 같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동네보다 방화마을이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마을사람들이 서로 통합해서 살기 좋은 방화마을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을에 산촌생태마을이라는 큰 사업이 들어와 아직은 우왕좌왕, 좌충우돌 하지만 마을의 화합과 단합을 누구보다 바라고 그렇게 노력하는 마을주민들이 있기에 방화마을이 어느 마을 못지않은 살기 좋은 마을로 변모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