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김영수 씨
김영수 씨
정천면 봉학리 상조림마을 출신
삼우엔지니이링 부장

정천면이 고향인 김영수 씨를 만났다. 김씨가 살았던 마을은 상조림마을이다. 지금은 그 마을 이름조차 생소하다. 상조림마을은 항가동마을과 통합되면서 상항마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이 통합되었어도 예전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정천면 천지가든에서 만난 김영수 씨로부터 고향과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양수 씨는 조림초등학교 10회 졸업생이다. 김씨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 그는 재경향우회와 동창회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고향에 대한 애향심 때문이다.

"고향은 언제나 정겹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친구가 있어 그런 것 같아요. 숨 쉬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눈물 날 정도로 반갑습니다."

김영수 씨는 고향 땅에서 자란 나무만 보아도 정겨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 이유가 아마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고향에 내려와 살고 싶어했다. 언젠가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김씨는 학창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1976년 조림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미군이 준 강냉이 빵과 분유를 먹으며 공부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요. 도로변에서 판매하고 있는 빵 있죠. 노란색 삼각형모양의 빵요. 그 시절에는 강냉이 빵이었죠. 그것으로 강냉이 죽, 일명 꿀꿀이 죽을 끓여 먹었어요. 그걸 먹으면서 공부했어요. 왕정열 친구 집에서 점심 먹던 기억도 잊지 못하죠. 그 친구가 학교 옆에 살았거든요."

이런 추억 때문에 김영수 씨는 고향에 내려오면 친구들이 근무하고 있는 곳을 찾는다. 고향 친구들은 자주 볼 수 없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초등학교 동창회 등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고향에 오면 친구들이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 들려 보고 갑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2달에 한번 모임을 합니다."

가끔 찾아오는 고향이지만 학창시절과는 많은 변화가 있음을 회상했다.
지금은 조림초등학교까지 10분 거리다. 그러나 김영수 씨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처럼 어렵게 학교를 다녔던 김영수 씨는 삼우엔지니어링에 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김영수 씨는 삼우엔지니어링에 다니기 전 한전에 다녔다. 그런 그가 삼우엔지니어링에 입사하게 된 것은 형의 일을 도와 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일한 것이 20년이 됐다.
"삼우엔지니어링은 전기·전자분야 등 자동화 시스템을 설비하는 업체입니다. 요즘은 일력 관리가 힘들어 자동화를 많이 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100명 고용할 인력을 반절 이하로 인력을 감축하는 것에 대해서는 죄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 대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입니다. 인력관리가 힘드니깐요."

자동화 시스템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영수 씨가 말한 것처럼 고용 인력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동화 설비가 좋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일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김영수 씨도 죄의식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싶다.

김영수 씨를 만나는 동안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고향이 얼마 소중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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