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지도해야

▲ 하교버스를 놓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어스름한 오후, 걸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다.
#1
지난 11일 오후 3시 10분께, 26번 국도를 타고 전주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진안마이학습장 입구를 약 50m 정도 남겨 놓은 위치에서 키가 1미터가 조금 넘는 사내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국도를 걸어가는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걸어가고 있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마이학습장 입구 근처까지 차를 몰고 와 비상등을 켰다.

차 근처까지 다가온 아이에게 말을 건냈다.
"어디까지 가니"
주변이 혼잡해서 아이의 말을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한마디는 정확하게 들렸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러더니 어설프게 세운 내 차를 걱정하는 건지 "여기 사고다발성 지역이라고 쓰여 있어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말하는 '사고다발성' 구간인 26번국도. 이 도로가 어떤 길인지 그동안 너무나 잘 봐왔다. 지난 7개월 동안 아침, 저녁으로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로드킬 당한 동물을 숱하게 봐왔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 흔적을 목격했었다. 지독하게 끔직한 동물들의 시체들로, 내 기억에 26번 국도가 깨끗했던 적은 없었다. 이런 도로를 아이가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든 26번 국도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아이를 차에 태우기 위해 신분을 밝히고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설득하려고 했지만 아이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웠다. 낯선 사람 = 위험하다는 공식에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아이는 타지 않았고 "조금만 더 가면 돼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아이의 집이 조금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원연장마을이 보이기 때문에 '그 근처겠지'라고 생각했다.

오후 3시 40분경에 원연장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이는 마을을 그냥 지나쳤다. 아이는 뒤에서 차가 쫒아오는 게 겁났는지 바람이 차가운데도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얼굴과 손목이 빨갛게 변해가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차에 타지 않는 아이가 기특했다. 집에 데려다 준다고 아이에게 말할 때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인 내 차에 쉽게 탈까봐 내심 걱정도 들었다.

오후 4시경, 용대 마을 표지판이 보이지만 아이는 용대마을도 지나칠 것 같다.
"저기 터널 보이죠. 저 밑구녕만 지나면 부곡이 나오는데요. 거기 지나면 상평이 나와요."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감은 안 오지만 대충 들어도 한참 남은 것 같았다.
"너무 멀다. 엄마 전화번호 몇 번인지 알어?"
"몰라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은 한 시간 전부터 했는데…'

아이가 등짝만한 가방을 메고 도로를 걸어가고 있는 걸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 가방도 들어줄 수 없었고 지나가는 마을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와 같이 걸을 수도 없었다. 따뜻한 차안에서 비상등 켜고 차를 찔끔찔끔 끌면서 따라갔다.

농공단지에 들어섰다. 마을에서 배추를 절이던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아이를 왜 따라 가냐고 묻는다. 간단하게 설명하고 거기에 "아이가 상평까지 간다는데요."라고 덧붙였다.
아주머니들이 기겁을 한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아직도 기겁할 정도로 남아 있다는 거다.
아이는 눈으로 기억하고 있는 길을 계속 걸어갔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멀리 보이는 한 마을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우리 집이요, 저기에 있어요."
나는 반가움에 소리쳤다.
"그러니"
이제 집에 다 도착했으니 그만 가보라는 뜻인가 싶었다. 혼자 갈 수 있다더니, 정말 2시간 가까운 길을 혼자 걸어왔다.

나는 아이를 따라 집까지 찾아갔고 아이의 할아버지에게 신분을 밝혔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아 마을 주민을 통해서 부모님의 행방을 확인했다.
통학버스에서 아이가 내리지 않자 부모님은 학교로 찾아간 것이다. 학교로 전화를 걸어 아이의 귀가 사실을 알렸다. 오후 5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부모님을 같이 기다리는 동안 아이에게 물었다.

"왜 버스를 놓쳤니"
"보육실(방과 후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맡아서 숙제 등을 검토해 준다.)에 갔는데 친구들이 없었고요. 신발장에도(신발이) 없었어요."
한 눈을 판 사이에 친구들도 통학버스도 집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가 사실을 전해들은 부모님이 다급하게 집으로 돌아왔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나무란다. 걸어왔다는 이야기에 다시 한번 놀란다.
"통학버스를 놓친 적이 이번이 세 번째 입니다. 아이하고 그 길로 걸어온 적이 한 번 있었는데…어떻게 걸어서 왔어."
부모님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2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의 수업이 월·수·금요일은 12시 50분에 마치고 화·수요일은 1시 30분에 끝난다. 방과 후 수업(특별활동이나 보육교실)까지 끝나면 통학버스를 타는데 아이가 타는 통학버스는 수요일은 2시 20분, 토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은 3시 20분 정도에 출발한다.

수요일 아이를 만난 시간은 대략 3시 10분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로타리를 지나 26번 국도까지 나오는데 최소한 30분은 넘게 걸렸을 것이므로 두 시간이 넘도록 걸었다는 얘기다.
다음 날 12일,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통학버스를 타기 5분~10분 전에 수업을 끝내주는데요. 29명의 반 아이들은 방과 후 특별활동이나 보육실(선생님 지도하에 자율학습)에 가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 외에 성적이 부진한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지도를 하면서 보충수업을 하고요."

이렇게 반이 나눠져서 수업을 받기 때문에 흩어진 아이들을 통학버스 시간에 맞춰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버스 앞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 그 동안 어려웠다는 것이 선생님의 입장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임의대로 군것질을 하러 가거나 딴길(?)로 새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같은 날 12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통학버스 기사가 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아이가 타는 차량은 전세버스였다.

"제 시간에 버스에 안타고 군것질 하는데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대형 통학버스를 학교 근처에 정차하기 어렵다. 좁은 도로에 정차를 하고 어디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지 않나."
버스기사는 아이가 통학버스를 놓친 그날, 아이를 마중 나온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자신도 통학버스를 운행하고 와서 자가용으로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전세버스는 230만 원에 유류비와 보조교사 월급까지 해결하면서 운행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학원 가는 아이들, 부모님이 와서 데리고 가는 아이들, 아이들 마음대로 타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고 우리가 아이들 승차여부까지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더 이상 차를 운행하기는 어렵다."

다음날 13일, 해당학교 교장선생님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7㎞ 가까운 거리를 걸어간 사실을 처음 들었다.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정말 죄송한 일입니다. 토요일에는 통학버스에 탑승해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경험합니다.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안타깝습니다."

"인근 학원이나 공부방에 가거나 부모님이 태우러 오든지 아이들이 개인마다 일정이 수시로 바뀝니다. 학교에서 운행하는 통학버스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버스를 타지 않을 때 버스기사나 교통도우미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전세버스의 경우에는 아이들과 직원과의 소통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세버스 입장에서도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통학버스가 대형버스다보니 학교로 들어올 수도 없고 오랜 시간 도로에 정차할 공간도 없습니다. 통학버스를 타는 아이들의 행선지가 수시로 바뀌면서 아이들을 기다리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방이나 학원을 안 가고 통학버스를 이용해서 집단 하교를 한다면 좋겠습니다. 100% 아이들을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가슴이 아픕니다. 충분히 이번 문제점을 인식했으니 더 신경을 쓰고 노력하겠습니다."
 
#3
학교 선생님과 버스기사, 아이의 주변 어른들은 그 아이에 대해 주의가 산만하고 한 눈을 잘 판다고 말한다. 군것질에 시선을 빼앗겨 버스시간을 놓치므로 용돈을 주는 부모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학교에서 최대한 노력은 하지만 아이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선생님과 운전기사 측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100% 완벽할 수 없다보니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라는 말을 했다.

이해한다. 하지만 선생님과 운전기사의 말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선생님과 운전기사가 하는 일이 완벽하지 않은 것 처럼 아이들도 100% 완벽하지 않는 아이로 바라보면 안 될까?
담임선생님처럼 아이와 오랜 시간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어떤 학교생활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겪은 아이는 평범한 초등학생 1학년이었다.

아이와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때 아이는 서툴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내가 물어보는 말에 동문서답은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말고 수업을 받길 바라고, 흘리지 않고 밥을 먹길 바라고, 하루도 틀리지 않고 제 시간에 맞춰서 알아서 통학버스를 타기를 바란다.

거기에 학교 앞 달콤한 군것질에 눈을 돌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는 것까지…
어른들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말고 학교에서 만이라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지도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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