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05 용담면 송풍리 왕두골마을

▲ 왕두골마을은 용담댐 건설로 인해 1997년 새롭게 조성된 마을로 수몰 이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송풍리에서 정천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용담댐 휴게소 가는 길이 나온다. 휴게소로 가는 길로 진입하기 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언덕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름 하여 왕두골 마을이다.

왕두골 마을은 뒤로는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용담댐이 흘러 그야말로 배산임수 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이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들이다. 수몰민들 대부분은 원월계리, 와정마을, 용담면 소재지에서 왔으며 몇 년 전부터는 대전, 전주에서 이사 온 사람들도 함께 산다.

1997년도 산을 깎아서 그 위에 마을이 조성된 왕두골 마을은 현재 9세대 19명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이다.
 

▲ 왕두골에서 40여 년을 살아 온 박해룡 할아버지
왕두골마을에서 40년 세월
수몰된 후 새롭게 형성된 마을에서 약 100m(?) 밑으로 내려오면 두 집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있는 첫 집은 사과농장이고 두 번째 집은 오래된 흙벽돌집이다. 현재 그 집에는 박종기 씨가 아버지 박해룡(77세)씨와 함께 살고 있다.

박해룡 씨가 와정마을에서 이사 해 왕두골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지 벌써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로선 그가 왕두골마을 역사의 가장 오래된 산 증인인 셈이다.
"기억나는 게 있나. 다 잊어버렸지."

40여 년 전만해도 먹고 사는 게 바빠 지금 돌이켜보아도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박해룡 씨였다. 그래도 그에게서 왕두골마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들을 수 있었다.
박 씨가 이사 올 당시만 해도 왕두골 마을엔 다섯 가구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대부분이 타지에서 들어 온 사람들로 산을 일궈 농토 삼고, 인삼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그때 살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어. 다 다른 곳으로 나갔지."
왕두골 마을은 딱히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사람들이 같은 곳으로 걸어 다니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 길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멧돼지 농장이 생기고 자동차가 다니면서 농로가 생겼다. 그리고 경운기도 다니게 되었다. 그 덕에 사람들이 다니기엔 수월해 졌다.

"옛날에 여기는 홑티라고 불렸어. 골짜기가 조용하다는 뜻이지. 피난처와 마찬가지였어. 옛날만해도 길도 없어 장보면 지게로 나르고 했지. 지금은 도로도 생기고 천지개벽해서 좋아."
 

▲ 왕두골이라는 지명에 대해 설명해 준 고만근 씨
왕이 지나간 골목(?)
본래 왕두골 마을은 왕덕골이라는 지명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 이를 본 마을 주민 고만근 씨는 면사무소에 이야기해 올바른 지명인 왕두골로 고쳐놓았다.
고만근 씨에 의하면 마을이 조성된 곳에 고개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이 왕두골이었다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임금이 지나간 고개라는 뜻이란다.

또한 1998년 진안문화원에서 펴낸 '삶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라는 책에 의하면 '와정 넘어 왕두골은 용강산의 운손(雲孫)이요'라는 문구가 있다. 운손이라 함은 '구름과 같이 멀어진 자손이라는 뜻으로, 팔대(八代)의 자손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아마도 수몰로 인해 새롭게 조성된 마을이 대대손손 번창하여 오래된 역사를 가져갈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나름의 해몽을 덧붙여본다.
 
오후 2시면 마을은 초저녁

마을을 찾은 날 마을 현황을 듣기 위해 먼저 이장 신용암씨 댁을 방문했다. 하지만 신 이장은 출타 중이었고 집에는 부인과 며느리가 정답게 구운 감자를 먹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운동가자며 이장 댁을 찾았다.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느리기도, 빠르기도 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저녁운동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긍이 가기도 했다. 마을위치가 음지라 왕두골은 오후 2시면 해가 넘어간단다. 그러니 어찌 보면 그 시간이 운동하기엔 적합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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