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세상
마을회관에서 잠자리까지 함께 하는 하가막마을 주민들

▲ 왼쪽부터 정병순, 김순이, 오정순 할머니가 마을회관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농한기다. 농촌에 찾아온 한가로운 기간이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제대로 펴지도 못한 허리를 누이는 계절이다. 그러나 모두가 한가롭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독거노인이라면 농한기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으리라. 건강이 허락지 않아 농사를 제대로 못 지었으니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돈 날아가는 소리로 들려 제대로 틀지도 못한 채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 궁핍도 서러운데 말벗까지 없어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만큼이나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하지만 농한기의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마을회관에서 잠까지 주무시며 함께 생활하는 분들이 있다기에 진안읍 가막리 하가막마을을 찾았다. 지난 7일 기자가 찾아간 날은 많은 눈이 내린 이틀 후라 길이 미끄러웠다. 더욱이나 찾아가는 곳은 첩첩산중으로 유명한 가막리였다. 오천리에서 가막리로 넘어가는 고갯길 정상에는 하루 종일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어서 날씨가 풀리기 전까지는 늘 빙판길이라고 한다. 그만큼 외부와의 단절이 쉬운 곳이 가막리다. 조심조심 승용차를 몰아 하가막마을을 찾아갔다. 찻길에서 마을회관으로 건너가는 길은 한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게 눈길이 나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이 적음을 느꼈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은 여럿 있는데 실내는 조용했다. 인사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세 분의 할머니가 한 이불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누워 있다가 방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스르르 일어나셨다. 하가막마을 김순이(80), 정병순(83), 오정순(82) 할머니였다.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평온해 보였다. 회관에서 주무시는 분이 한 분 더 있지만 얼마 전 다쳐서 병원에 계신단다.

농한기의 마을회관은 점심과 저녁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보내다가 잘 시간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게 보통의 모습이지만 이곳 할머니들은 늦은 밤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잠자리까지 함께 하며 가족처럼 지낸다고 했다.

가막리에서 태어났고 가막리 남자를 만나 평생을 가막리에서 살았다는 정병순 할머니는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이렇게 모여 밥도 함께 먹고, 얘기도 나누고, 잠도 같이 자며 생활하는 게 좋다."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순이 할머니는 가막리로 귀농한 두 아들이 각각 집을 지어 살고 있지만 겨울철에는 이곳 회관에서 함께 먹고 자는 게 좋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활비를 아끼려고 회관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회관을 찾는 모습에서 노년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겨울철 뜨끈한 마을회관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생활하는 하가막마을 어르신들을 보며 추운 골방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시는 어른들이 회관으로 모일 수 있는 분위기가 각 마을마다 조성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회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더 확충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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