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07 용담면 호계리 호계마을

▲ 호계마을은 집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도로변, 산 기슭 등. 그들은 모두 고향을 찾아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

용담면에 소속된 법정리. 용담군 군내면 지역으로 뒷산에 범같이 생긴 바위가 있고 내가 흐르므로 범바우, 호암 또는 호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호계리라 하여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용담댐 건설로 전 마을이 수몰되었으나 옛 마을의 산기슭에 수몰 주민들이 이주하여 새로 호계마을을 조성했다.(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 발췌)
 
◆굽이굽이 호계마을 가는 길
용담 호계리 호계마을 가는 길은 참 길다. 호계마을 표지판이 있는 큰 도로에서부터 마을까지, 굽이굽이 가는 길이 참으로 길다.
자동차 두 대가 비켜가기에 아슬아슬하기만 한 마을 길, 그 길을 가다보면 집하나를 만나고, 또 가다보면 집하나를 만난다. 이처럼 호계마을은 고향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와 터전을 일군 사람들로 인해 중간 중간에 집들이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소방마을이라 불린다. 대부분 수몰되기 전 소방마을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한참을 간 것 같다. 끝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이 그 길 같기만 하고, 지루하다. 큰 도로에서 마을까지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빙~ 둘러 만들어진 길이 마을까지 가는 시간을 더디게 만든다.
 

▲ 호계마을의 새로운 이장 고정근 씨

◆많은 이야기 담고 있는 호계리
소방마을, 대방마을, 호암마을을 합해서 호계리라 불렀다. 수몰 전 호암마을은 100여 가구, 대방마을은 65가구(최고), 소방마을은 35가구(최고)가 모여 산, 용담면에서 제법 큰 마을에 속했다.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서전에 따르면 호암마을은 범바우, 호암, 호계라고 불렀는데 이는 뒷산이 호랑이 형이고 산기슭에 호랑이 바위가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소방마을, 대방마을은 예전에 밤나무가 많아 방골이라 불렸으며 큰방골과 작은방골에서 한자음을 취해 대방동, 소방동이 되었다고 한다.
대방마을이 고향이고 몇 년 전부터 대방마을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고정근(57) 이장에게서 대방마을이 부자동네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방마을이 잘 살아서 예전에는 호암마을에서 품을 팔기 위해 오곤 했습니다. 일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온 가족을 데리고 와 밥 먹고 가고……."
하지만 점차 뒤바뀌어 대방마을은 빈촌이 되고 호암, 소방마을이 부촌이 되었단다.
마을에 사람들도 많고, 용담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제법 큰 탓에 호계리가 담고 있는 역사는 참으로 많다.
각 마을마다 당산제, 기우제, 산제, 장승제 등,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 간의 다양한 이야기거리 등.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많던 이야기들은 모두 용담댐 속으로 잠겨 버렸다.
아쉽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 마을 사람들의 흔적이 새겨진 고개, 바위 등이 사라진 것이.
 
◆호계마을은 신생마을
옛 역사는 용담댐 건설과 함께, 그야말로 역사로 묻혔고 이제 호암, 대방, 소방마을은 호계마을로 새롭게 시작됐다.
호계마을 최초 주민은 김광배(60)씨다. 옥거리가 고향이던 그는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던 곳에 터를 잡았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현재 12가구 30여명이 산다.
"호계마을은 신생마을입니다. 수몰로 마을자체가 없어졌다가 고향을 찾아 온 사람들로 인해 자율적으로 생긴 마을이지요."
고정근 이장은 옛 소방마을 자리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소방마을이 고향으로, 네 자매가 나란히 터를 잡았다고 전했다.
과거엔 소방, 대방, 호암마을로 나누어져 있던 마을, 하지만 이제는 소방, 대방이 아닌 하나의 마을인 호계마을로 불린다.
 
◆향우들 매년 만나
매년 6월 첫째 주 일요일, 이날만큼은 호계마을이 시끌벅적하다. 바로 방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9회째가 됩니다. 6월 첫째 주 일요일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안부도 묻고 서로 교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날 소방, 호암마을 향우들까지 모이는 건 아니다. 이날은 대방마을 향우들만의 시간이다. 고 이장의 말에 따르면 3~4년 전부터 호암마을 사람들은 6월 둘째 주에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작년부터 소방마을 사람들도 모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용담댐으로 수몰되면서 마을재산을 보상받아 일부는 마을주민들에게 나누고 일부의 기금은 모아서 모임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50여명 정도 모였는데 이제는 5~60명 정도가 모입니다. 그리고 마을 공터에 세워진 대방마을이라는 비석은 석재공장을 하고 있는 향우가 기증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노인들은 사망하고 자녀들만 남았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고향의 정을, 향수를 잘 모른다. 그것이 고정근 이장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을이 젊다
"우리 마을엔 육십이 넘은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어요. 대부분 50대입니다."
고정근 이장은 마을사람들이 대부분 젊다고 말한다. 많은 수의 주민은 아니지만 소속된 사람들이 젊다고 하니 호계마을엔 활력과 희망이 있다.
호계마을은 그린 빌리지 사업도 진행했고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도 신청했었다. 그만큼 정지되어 있기보다 마을주민들 간 무엇인가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을 신청해서 작년엔 비록 떨어졌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한 번 신청해 보려고 합니다."
2010년 새롭게 호계마을을 이끌 이장이 된 고정근 씨는 마을에 대한 다른 특별한 계획은 없다. 오직 마을과 주민들이 다 함께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마을주민들이 서로 잘 융합한다면 충분히 해 낼 수 있습니다."

▲ 방골사람들은 매년 6월 이곳에 모인다.
▲ 집을 지나 이 길로 쭉 올라가다 보면 이드름재다. 그곳엔 번들바위도 있다.
▲ 마을회관. 하지만 마을과 너무 동 떨어져있는 외딴 곳에 위치한 탓에 사용이 어려워 보인다.


[호암]
동쪽은 범바우 모퉁이이다. 마을에서 용담 소재지나 부암과 성남 그리고 금산쪽으로 이어지는 모룡이다. 서쪽에는 삼거리가 있다. 오른쪽으로 소방마을, 왼쪽으로 대방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당산제, 기우제, 뱅이, 영등제 등을 지냈다.
 
[대방]
대성골 오른쪽 산 너머에는 피난 집터가 있었고 왼쪽에는 팥밭골이 있었다. 동쪽은 양지까끔, 사람상골과 음지까끔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범바우 마을로 이어진다. 대성골에서 이드름재로 들어가는 곳에 여름이면 마을주민들이 천렵을 지내던 번들바위가 현재도 있다. 남서쪽에는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절터골이 있다. 절에 빈대가 많아 현재의 천황사로 옮겨갔다는 전설이 있으며 한지를 만들던 지소가 1975년까지 2개소 있었다. 산제, 거리제, 장승제, 팥죽제, 기우제, 뱅이, 농신제 등을 지냈다.
 
[소방동]
맨 처음 마을이 이루어진 옛 마을의 터인 솥단지골은 골짜기 입구에 지소가 생기면서 지소골이라고도 하였다. 원래 소방마을은 열두 번 시냇물을 건너야 들어오는 깊숙한 마을이었지만 1974년부터 새마을 길을 내기 시작했다. 매봉이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 매를 받고 매사냥을 하였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의 가장 높은 봉을 봉화봉이라고 부른다. 가뭄이 들어 농사에 지장이 있을 때 이곳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뱅이, 기우제 등을 지냈다.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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