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이발관(진안읍 군하리)

▲ 흰 가운을 걸치고 언제라도 가위를 들고 손님의 머리를 말쑥하게 만들고 싶다.
낡은 흑백사진 속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발소가 있다. 군민자치센터에서 문화의 집 방향에 자리한 진안읍 갑을 이발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일단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손님이 없어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 임종섭(69)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임종섭 씨가 처음 이발을 배운 것은 열 여섯살 때이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그런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았을 때니까. 처음엔 양복점에서 일하다가 안 되겠더라구. 그래 이발소 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하니까 청소하면서 일을 배우게 된 거지. 그때는 다 그랬어."

이발을 처음 시작했을때를 이야기하는 임종섭 씨 얼굴에 그리움이 보인다.
이발 기술을 배우고 처음 일한 곳이 지금은 없어진 진안 중학교 앞에 협동 이용원이었다. 그곳이 없어지면서 잠시 객지로 나가 이발사 생활을 하다가 1973년 고향인 진안으로 돌아왔다.

진안 초등학교 앞에 자리를 잡고 시작할 때만 해도 새벽 4시면 문을 열었다.
"그 때는 그 새벽에 와서 이발하겠다고 그랬어. 지금은 7시에 열어도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도 있어."
지금 자리로 이사한 것은 2002년에 주택이었던 곳을 이발소로 개조하면서부터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 쓰던 물건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오래되어서 녹이 슨 바리깡, 면도칼, 가죽끈 등이 53년 동안 이발사 생활의 흔적을 보여준다. 손잡이를 당기면 뒤로 젖혀지는 낡은 의자 뒤로는 수건이 걸려 있고, 의자 앞으로는 비누거품을 내는 플라스틱 컵이 놓여있고, 그 옆으로 가위와 털이개 등이 가지런히 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뒤로는 머리를 감기는 세면대가 있다.

"옛날에 드라이기 그런게 있나. 그냥 수건으로 말리고, 석탄 때서 쓰는 불고대기라는 거 있어. 불구녘에다 고대기를 달궈서 물수건에다 지져가면서 그렇게 했지. 여학생들도 전부 이발소 와서 단발머리 자르고 그랬어. 미장원은 나이 좀 있는 아주머니들만 가는 걸로 알았지."

지금은 아이들도 전부 미장원으로 간다. 그래서 의자 위에 걸치는 널빤지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진안읍내만도 이발소가 10개, 미장원은 20개가 넘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미장원, 이발소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여름 되면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서로 얼굴도 잘 몰라. 그 많던 단골손님들도 이제는 많이 죽었지."

그래도 임종섭 씨는 몸 성할 때까지 이발소 문을 열 것이라고 말한다.
임종섭 씨 바람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후배를 키우는 일이다.
"후배를 키우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어. 예전처럼 밥만 준다고 일 배울려고 안하지. 월급을 줘야하는데 월급을 줄 만큼 장사가 안 되니 이래저래 그거이 제일 아쉽네."

길을 가는 사람에게 낡은 이발소 간판과 사인불은 추억의 대상이지만, 임종섭씨에게는 7남매를 키워낸 일터이자, 기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사라져가는 것들이 어디 이발소밖에 없으랴마는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다. 새롭고 편한 것들은 낡고 불편한 것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나 라고.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