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위, 70세 이상 할머니들 대상으로 목욕봉사 나서

▲ 능금리 할머니들이 찜질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향면에 목욕꽃이 피었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다. 동향면 주민자치센터 찜질방에 마을별로 일정을 정해 70세 이상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동향면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성수태) 위원들이 목욕봉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이웃 할머니의 몸을 씻겨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으로 2월 첫 날에 동향면을 찾았다.
 
금남의 장소에 들어간 두 남자
할아버지도 아닌 할머니들의 목욕이라 불쑥 들어가기가 계면쩍어 우선 유근주 동향면장을 찾아갔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유 면장은 "다른 남자는 못 들어가도 면장은 들어가도 돼."라며 기분 좋게 기자를 찜질방으로 안내했다.

주민자치센터 내에 마련된 찜질방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들의 몸을 씻겨주고 있던 이종순 씨가 거실로 나왔다가 두 명의 남자를 보더니 "아이고, 안 돼요. 남자들이 여긴 왜."하며 손사래를 친다.
가벼운 티셔츠를 입고 있는 이종순 씨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목욕을 시켜주다가 잠시 나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유근주 면장은 "면장하고 기자는 괜찮아요!"라며 이종순 씨의 장난어린 말류를 뒤로하고 찜질방 문을 열었다. 아담한 찜질방 안에는 여덟 명의 할머니들이 내복 차림으로 앉았거니 누웠거니 하며 쉬고 있다가 남자들의 느닷없는 방문에 짐짓 부끄러운 듯 자리를 고쳐 앉았다.

기자의 기억으로 예전에는 할머니들이 한결같이 빨간내복이었는데 그날 동향면 능금리 할머니들의 내복은 분홍색, 푸른색 등 밝고 부드러운 느낌의 색이었다. 겨울엔 빨간내복이란 등식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 목욕을 마친 할머니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차량봉사를 했던 박찬종, 김동철 씨의 모습도 보인다.
"신문에 나면 어떻게, 부끄러워서"
난데없이 불청객이 들이닥치자 뜨뜻한 찜질방에서 편히 쉬고 있던 할머니들은 내복차림이 부끄러운 듯 팔을 부비며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미소가 일품인 유근주 면장은 특유의 미소로 진안신문 기자와 함께 왔다며 기자를 소개했다. 신문이라는 소리를 듣자 뭔가 부끄러움을 들킨 듯 몸을 더욱 훔츠리며 "아이고, 신문에 나면 어떻햐 부끄러워서." 한다. 하지만 기자의 눈엔 정말 부끄러워서라기보다 그저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날 오전시간을 이용하게 된 능금리 할머니는 모두 열네 분이었는데, 다른 여섯 분은 이미 샤워실에서 봉사자 이종순 씨와 정영순 씨의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목욕을 기다리며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있는 여덟 명의 할머니들은 이런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집에서는 공간도 좁고 뜨거운 물 마련도 부담스러워 겨울철 목욕은 아예 포기하고 지낸다고 한다. 읍내 목욕탕에 가려해도 버스 타는 시간이 길어 그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런 차에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무료로 목욕을 시켜준다니 어깨춤이 절로 날 일이었다. 그것도 마을 앞에서 주민자치센터까지 봉사차량으로 편히 모시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추동마을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는 "옛날 같으면 농사가 없는 겨울철에도 여자들은 요즘처럼 한가롭게 놀 뜸이 없었어. 그런데 요즘은 여자들 천국 같아. 겨울엔 회관에서 매일 놀고 이렇게 목욕도 시켜주니 얼마나 좋아."라며 좋아했다.
 

▲ 목욕을 끝낸 할머니들이 이종순, 정영순씨가 마련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웃음 잃지 않는 봉사자가 있기에
열네 분의 할머니들에게 정성껏 목욕을 시켜준 정영순·이종순 씨는 목욕이 끝나자마자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집에서 직접 마련해 가져온 국과 반찬으로 어른들의 점심을 대접하기에 바빴다. 전기밥솥의 밥이 익자 차량봉사를 담당했던 박찬종 씨와 김동철 씨가 점심 차리는 일을 도왔다.

박찬종 씨와 김동철 씨는 단순히 반찬을 나르고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는 일만 기계적으로 하지 않았다. 급할 것 없는 동작으로 이런 저런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봉사자의 농담에 할머니들도 가만있지 않고 맞장구를 치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봉사자의 손길로 밥상도 없이 맨바닥에 반찬과 국이 차려졌다. 두 줄로 길게 마주앉은 할머니들은 허기진 듯 부산스럽게 밥을 드시기 시작했다. 찜질과 목욕을 하셨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숟가락이 한 번 옮겨 질 때마다 국과 반찬이 왜 이렇게 맛있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할머니. 점심식사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목욕도 했고 음식도 입에 맞았으니 숟가락 들고 있는 시간이 짧은 건 당연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봉사자의 세심함 돋보여
즐겁게 점심을 먹고 난 할머니들은 따뜻한 방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는 박찬종 씨가 준비한 승합차에 올라탔다. 운전을 담당한 박찬종 씨는 할머니들이 사시는 마을 마을을 돌며 안전한 귀가를 도왔다. 한 분 한 분 내릴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박찬종 씨의 모습에서 사람의 마음은 도움을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행복하다는 진리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동향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목욕 봉사는 1월 28일부터 2월 5일까지 7일간의 일정으로 진행했다. 대량리를 시작으로 능금리, 학선리, 자산리, 성산리, 신송리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오전과 오후로 나눠 평균 열다섯 분의 할머니가 목욕봉사를 받았다.

주민자치위원회 여성위원이 2인 1조로 목욕과 식사를 맡았으며 남성위원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할머니들을 모시고 오고 다시 모셔다 드리는 일을 도맡았다.

올해로 3년째 이어오고 있는 동향면의 겨울 목욕 봉사는 점점 고령화되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는 농촌지역에서 꼭 필요한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는 번지면 번질수록 그 향기가 짙어지고 점점 더 확산되어 가기 마련이다. 동향면의 아름다움이 주변으로 점점 번져나가 진안의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 박찬종씨가 하능마을 앞에서 어르신들의 하차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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