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마당 담당 윤일호 선생님

닷새 뒤에 죽는다면

3학년 후노 가즈히코
 
엄마랑 동생이랑 할머니한테 가서
사진을 찍어서
잘 봐 둡니다
죽을 때
안 아프기를 기도합니다
가장 좋은 이부자리를
깔아 달라고 합니다
관 속에
내 물건을 옮겨 놓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랑
크로켓이랑 샐러드랑 푸딩을
넣어 둡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죽은 뒤에 돈이 부족하지 않도록 합니다

닷새 뒤에 죽는다면

3학년 다나카 아쓰코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닌다
공부 같은 건 절대로 안 한다
놀고 또 놀고 마구마구 놀 거다
혹시 엄마가 "공부해."하면
"어차피 죽을 건데 놀 거야."하고 실컷 논다
만화책 보고 만화만 그리고
하루 종일 신나게 산다
생선초밥 3접시
장어덮밥 6그릇
부침개 10개
사탕 52개
맛있는 것만 먹는다
텔레비전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죽으면 필요 없으니까
발톱이랑 손톱을 죄다 물어뜯는다

함께 나누는 생각

일본 아이들이 쓴 시 4
어른들에게 닷새 뒤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아마도 많은 대답들이 우울하겠지.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생각이 맑고, 때 묻지 않아서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서 우울한 생각보다는 우선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린다. <시 1>을 쓴 아이는 죽고 난 다음 뒷정리를 하는 여유를 보이고 <시 2>를 쓴 아이는 그 동안 삶 속에서 하지 못한 것들을 충분히 하려고 한다.
자칫 이런 글들을 장난스럽게 쓰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는 자료가 되기보다는 말장난이 될 수 있다.
시를 쓰는 까닭은 말장난이 아니라 내 마음을 풀어내고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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