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탐방 - 백운면 삼산옥

▲ 한 옆에서는 권사장이 음식준비를 하고 한 옆에서는 반주를 즐기는 모습이 삼산옥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의자에 앉지 않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흰 구름 가득한 백운면에 가면 꼭 한 번 들려봐야 할 식당이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어머니가 너무도 잘 어우러져서 백운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삼산옥이 그곳이다.
4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삼산옥을 운영해 온 권순남(75세) 사장.

"할아버지가 여기 보이는 산의 봉우리가 세 개라 하여서 삼산옥이 좋다 하여 그렇게 지었어. 그래 아직도 이리 하고 있나봐."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을 만난다.

마치 목욕탕이나 이발소 세면실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하늘색 타일의 긴 조리대 겸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막걸리나 소주 한 잔 나누며 권사장이 만들어주는 그 날의 안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어떨 때는 무전이, 김치전이, 그것도 아니면 김치 하나만 놓아도 막걸리 값만 내놓고 간다. 고기 주문도 알아서 한다.

"어머니 우리 고기 좀 줘요."하면 "거기 목살 잘라 놨으니 갔다 먹어."하시는 권사장의 말에 알아서 굽고 알아서 값을 치르고 나간다. 특별한 메뉴판은 없다. 몇십년을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들이 오고가던 곳이기에 메뉴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농사짓기가 힘들어서 여그 와서 술집을 시작했지. 여그서 별 거 다 했어. 빵도 팔고, 짜장도 하고, 그러고는 밥도 하고 고기도 팔고 하게 된 거지."

새벽 5시에 문을 열면 문을 닫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밤에라도 누군가가 문 열고 들어와 막걸리 달라고 하면 내어준다. 권사장의 방도 식당 한 켠에 놓여있다. 40년 동안 부엌일을 한 권사장의 손은 굵은 마디와 군데 군데 검게 그을린 자욱이 선명하다. 얼굴은 화장으로 감출 수는 있어도 손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는 삼산옥이 2009년 5월에 큰 마음을 먹고 문을 닫았다. 권사장의 생일을 맞아 냇가로 식구들끼리 놀러갔다. 문 안 닫으면 내 혼자 문 열고 있을 거라는 아들의 말에 권사장은 내심 좋은 마음으로 선뜻 허락하였다.
"내가 몸이 이렇게 쓰러지는 날까지는 여그를 해야 하겄지."

권사장이 아픈 무릎을 끌며 주방으로 간다.
"내일 있을 취임식에 여그 와서 밥 먹는다고 54상 차려 놓으라고 하더라구. 지금부터 준비해 둬야해."
겉절이 할 배추를 다듬는 권사장 옆으로는 동네 분들이 알아서 고기를 꺼내 구워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주방을 맡고 있는 김남옥(67세)씨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몸이 어느 하나가 약하면 다른 기능이 강해진다고 한다. 김씨의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은 잘 들리지 않는 귀를 무색하게 만든다. 어쩌다가 김씨의 손에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쥐어주면 뛸 듯이 좋아하신다. 그렇게 한 번도 안 쉬고 이곳에서 20년 일하여 은안마을에 집도 새로 장만하였다. 그래도 권사장의 말은 용케 알아듣는다. 서로 토닥이기도 하지만 권사장과 김씨가 없다면 삼산옥에서 먹는 밥과 술은 그닥 재미있지도, 맛있지도 않을 것이다.

권사장의 마디 굵은 손과 김씨의 순한 웃음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가 오늘도 골목 사이를 빠져나와 흰 구름 가득한 백운 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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