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11 주천면 운봉리 양명마을

▲ 150년이 넘은 이 노거수에서 정월 초이튿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새벽녘에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더니 봄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다. 산자락을 휘감고 도는 안개가 아름다운 구봉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주천면 운봉리 양명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소나무를 깎아 만든 커다란 솟대들이다. 솟대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 입구에 세웠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서 잘 볼 수 없는 것인데 양명마을에서는 마을을 솟대마을로 만들겠다고 한다.
 
▲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쓰러진 솟대를 세우기 위해 주민들이 힘을 쓰고 있다.
◆구봉산이 있어 생활이 힘이 됩니다
1970년생인 고광종 이장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2005년이다.
시골이 좋아서 들어왔지만 16년만에 다시 돌아온 시골살이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그가 2009년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 만들기에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다른 마을보다는 50대 젊은 사람들이 13가구 이상 되고 노인분들도 젊은이들의 뜻에 함께 하였다.

2009년 그린빌리지 사업, 참살기 마을 사업, 으뜸마을 사업에 선정되어 마을만들기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마을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면서 구봉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는 앞뒤 모두 산이어서 땅 한 평 농사지어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이제 구봉산으로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라고 말하는 고광종 이장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솟대를 만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전부 모여 직접 깎고, 샌드질하고, 포크레인 불러 땅 파서 세운 겁니다. 힘들었어도 아주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조성섭 노인회장(65세)의 손을 보니 한 쪽이 불편하시다. 그 불편한 손으로 나무를 깎고 다듬었을 마음을 헤아려 본다.

2009년 10월에 마을회관을 신축하면서 펜션형으로 지어 구봉산을 찾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계획이다. 마을 입구 모정 위쪽에 위치한 회관은 방문자센터를 열고 샤워실과 주방 등 편의시설을 만들었고 올해 봄이 되면 구봉산을 찾는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또한 작년에 이어 산촌생태마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주민들과 함께 한 양명마을 만들기를 더 한층 발전시켜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힘쓸 생각이다.

▲ 새로지은 마을회관 앞에 마을주민들이 전부 모였다.
◆여기가 해가 제일 먼저 비치는 곳이야
주천면 운봉리 양명마을은 상양명(윗양명)과 하양명(아랫양명) 두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상양명리 일광선조라고 하여 산이 높고 구름이 많아 운봉리라 하고, 해가 제일 먼저 비치는 곳이라 하여 양명이라고 부르지."

김병중(75세) 씨는 옛날 일을 회상한다.
"이 길이 일제시대에 난 길인데 금산까지 갈라면 130리 되는 길을 걸어다녔지. 그러다가 새마을 사업하면서 버스도 다니고 하면서 옛날 길은 다 묵어버려서 다닐 수가 없게 되었지."

마을 앞으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면서 나무를 짊어지고, 아이 손을 잡고 그 먼 길을 다녔을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 길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생계유지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길은 주민들에게 생명의 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그 길을 중심으로 밭을 경작하고 아래 위 마을로 마실을 가는 길이기도 하다.

구봉산을 내려오는 길 왼편으로 단군전이 있다. 몇 백 년 동안이나 내려오던 이곳을 2009년에 다시 재건축하였다. 김병중씨는 "원래 우리나라가 단군이 기원 아니여. 요즈음은 서기를 쓰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는 단군제를 지내곤 해요."라고 말하며 위패를 조심히 열어 보인다. 매년 3월 보름날 지내는 단군제는 11시경에 시작하여 단군전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조화를 이룬 양명마을에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솟대가 있어 양명마을은 오늘도 풍요롭다.
◆우리 둘이 젤 친해
나이 먹으면서 등 긁어줄 남편은 없어도 단짝 친구 하나 있으면 외로움이 덜 하지 않을까. 그 세월을 함께 한 최 남(81세), 김성원(80세) 어머니는 이제 누구 하나가 없으면 서운하다.
"53살 먹어 남편 죽고 이렇게 여지껏 혼자 살아 그래 남편이 미워 죽겄어. 이제 늙고 아파서 농사도 못 짓고 그래 맨날 둘이서 놀아."

최씨는 17살에 시집와서 어디 한 번 안가고 구봉산을 지키고 앉아 있다. 무엇을 물어보면 수줍어 손을 가리고 웃으시는 김씨는 16살에 시집와 둘 다 남편 여의고 최씨와 단짝으로 지낸다. 그나마 겨울에는 주민들이 모두 모여 밥도 해 먹고 놀지만 농사철이 되면 적적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배고프니까 먹을 것도 귀하고 뭘 줘도 맛있었는데 지금은 입맛이 없어. 암것도 몰라. 그냥 밥만 먹고 살아."

나이 들면 밥 힘으로 산다고 했다. 요즈음에는 좀 더 좋은 음식을 찾아 일부러 먼 곳이나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지만, 못 먹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금 밥 세 끼 꼬박꼬박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우리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가 너무 호사스럽고 법석을 떨며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소박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임을 오늘 우리 어머니들이 가르쳐 주신다.

▲ 젊은 고광종 이장이 있어 양명마을은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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