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서림(진안읍 군상리)

▲ 책방에서의 하루 일과는 고되지만 하루도 거를 수 없다. 김씨의 손길을 거친 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책이란 우리 삶이다. 그저 지식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 책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인터넷으로 인해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겨우 독서 목록으로 정해진 것들만 보고, 공무원들도 책을 보기보다는 컴퓨터를 더 가까이 한다. 책방은 하나의 작은 우주다. 그 속에는 모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책방을 40년이나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서 40여 년의 시간을 책과 함께 살아온 김창연 씨(71)다.

일본에서 태어나 7살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전주에서 학교를 졸업했지만 고향인 진안으로 돌아온 것은 전주 홍지서림 사장의 권유였다.

"너가 진안에 가서 서점 한번 해봐라."
그 말에 군대를 제대하고 진안극장이 있던 자리에 1970년에 성지서림을 열었다. 그 당시에 성지서림 외에 세 개의 서점이 더 있었다. 문화서점, 학생사, 중앙서점, 그리고 지금은 성지서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 책을 사고 싶지만 돈이 없어 책방에 서성거리거나 가져가려고 하는 학생을 보면 그냥 주기도 했어요. 그런 학생들은 꼭 다시 오거든요."

40년 책과 함께 보내서인지 이제는 손님의 얼굴만 봐도 얄팍한 지식으로 아는 척하는 사람인지,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안다.

서점에 들어온 책들은 모두 김씨의 손과 눈과 마음을 거친다. 책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것 같지만 누가 어떤 책을 찾아도 금방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책을 대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요즈음 서점은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책을 찾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세상에서 김씨는 자신의 억센 손과 고집을 믿는다.

"마령에서 왔다고 2천원 빼주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얼마 빼주고 그래요."
같이 40년을 해 온 소숙자 씨(60)는 남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책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삶을 나누는 것과 같다는 김씨의 뜻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황순원의 '소나기'를 꼽는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순수하게 표현 될 수가 없어요. 나이가 들면서 그런 마음을 잃어가게 되는데 말이죠."

▲ 빼곡이 쌓여있는 책들로 인해 헌책방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서점의 하루는 늘 바쁘다. 책은 시간이 가면 그만큼의 먼지가 쌓이게 된다. 먼지를 닦아내고, 책을 분류별로 정리하고, 들어온 책을 정리하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는 일들이 하루 종일 쉼 없이 돌아간다. 책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책 주문이 들어오면 끈으로 묶어 배달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책을 읽지 않던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던가 둘 중의 하나다. 책이란 손으로 만져보며 그 향기에 취해 나의 손으로 들어올 때 진정한 나의 책이 되는 것이다.

"그저 정보만으로 책을 고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게 어떻게 내 책이 될 수 있겠어요."
성지(成志)라는 이름도 김씨가 지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뜻을 이루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김씨의 믿음 때문이다. 김씨의 소망이 있다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가지고 있는 책을 들고 산 속에 들어가 책의 향기에 취해 살고 싶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노인들도 책을 읽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아무리 독서교육을 학교에서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생활이 되지 못하면 그건 그저 정책에 불과하다.
아이들과, 부모님과 오늘 서점에 한 번 들려서 내 마음에 또 하나의 작은 우주를 만들어보는 일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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