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읍 '경상도 아즈메'

▲ 버스시간을 기다리다 혹은 장을 보러나왔다가 요기를 하기에 충분한 경상도 아즈메 포장마차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튀김 등을 사 먹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그런 포장마차 음식을 파는 곳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진안읍 우체국 앞에서 떢볶이, 순대, 붕어빵, 호떡, 오뎅을 팔고 있는 '경상도 아즈메' 포장마차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팔 수 있는 먹을거리를 모두 다루고 있다.

정천면 갈룡리가 고향인 임순택 씨(57)가 진안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은 1998년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모두 부산으로 이사를 간 것이 1968년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임씨 역시 10남매의 장남 노릇을 해야 했다.
13살부터 시작된 임씨의 사회생활은 정비소, 자전거로 막걸리 배달 등의 온갖 일을 거치면서 운송업에 30년을 일했다. 그러나 결국 교통사고로 14개월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퇴원을 하고 나서 부인 여순일 씨(56)에게 장사를 해보자고 했다. 트럭 한 대를 사서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가서 생선을 12만 원 어치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마이크를 켜고 '생선 사세요' 를 수없이 연습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음악만 틀어놓고 동네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래 동안 동네에서 살았던 덕분에 그 날 가져간 생선을 모두 팔았다.

"부산 사람들이 깔끔해요. 바로 집에 가서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해 줘야 가져가요. 집사람도 힘들고, 그 뒤로 5일장을 다니면서 채소도 팔고, 과일도 팔아보고 이것저것 했지요."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여씨는 5일장을 다니면서 여씨의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이 더해져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니까 재미있었어요."
하단, 진해, 양산,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오시개장 등 부산 일대 5일장은 모두 갔다. 경상남도 봉화가 고향인 여씨가 이 곳 진안으로 가장 힘든 것은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다.
"일이야 그리 힘든 거 없어요. 근데 경상도 사람이라고 무시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볼 때가 제일 속상해요."

 처음에는 임씨 혼자 바나나빵 기계 하나 사가지고 진안으로 돌아왔다.
무주, 장수, 장계 등지 장을 다니면서 바나나빵을 팔았다. 그리고 일년 후 부인 여씨를 설득했다.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번에 가자 했다. 이제 떠돌아다니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 지금 자리에 있는 포장마차를 사서 장사를 시작했다.

구룡리 석곡마을에 집을 마련하고 또 한 번 힘든 시간이 왔다. 큰 아들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빚도 많이 졌다. 그래도 임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정직하게 소신껏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지 않겠어요."
'경상도 아즈메'를 이용하는 사람은 주로 어르신들이 많다. 터미널과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도 작용한다.

"다른 건 다 먹어봤는데 이거만 못 먹어봐서 그런데 1천원 어치만 줄 수 있나?"
한 할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포장마차에 들어선다.
"어머니, 그거 좀 매운데, 앉으셔요."

된다 안된다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매울 것이 걱정되는 여씨의 마음은 손님들에게 늘 한결같다.
'경상도 아즈메'는 날이 아주 더운 6월부터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음식이 쉬이 상하기도 하고, 장사하는 사람도 그 열기로 인해 장사하기 힘들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장사를 시작한다.

아침 9시에 나와서 저녁 8시쯤에 장사를 접을 때면 왔던 손님에게 나머지 떨이로 호떡을 싸주기도 한다. 호떡 반죽은 직접 여씨가 집에서 해가지고 온다. 붕어빵 반죽은 포장마차에서 임씨가 한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이 다 잘해줘서 이 사람들 덕에 일해요."

앞에서 숙녀복을 파는 아주머니도, 길 건너 상가도 모두 이제는 한 식구이다. 비록 점포를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닌 노점상이지만 정직하게 일하는 경상도 아지메의 밝은 웃음소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는 정겨운 포장마차이다.

▲ 밝고 낙천적인 여 씨의 성격으로 고된 장사일도 그리 힘들지 않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