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면 흰구름 할인마트

▲ 흰구름 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박문곤 씨
"그 때는 돈이 그득했지."
백운시장이 한참 활성화 되던 시절, 없는 것 빼고 다 팔았던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운면 흰구름 할인마트는 올해로 30년을 맞이한다.

지금은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한산한 거리이지만 한 때 만 명에 가까운 백운 사람들이 이 거리를 다녔고, 흰구름 할인마트를 찾았다. 3대째 백운 토박이로 살고 있는 박문곤 씨(65·사진)는 "이곳에서 백운약방하고 우리가 완전 토박이지."라고 말한다.

박씨가 처음부터 가게를 이어받은 것은 아니었다. 21살에 결혼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 서울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제조 공장 사무직으로 일을 했다. 그 당시 월급이 1만 2천 원이었다.
"회사 다니니까 양복 한 벌 해서 입고 하숙비 내고 나면 쌀 한가마니 살 정도 남아."

그러다가 명절에 백운으로 왔다가 그대로 자리 잡고 앉았다. 그 때가 25살이었다. 가족이 여기 있었기에 서울 생활을 빨리 접고 장사를 시작 할 수 있었다.
박씨의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막걸리 주조장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인 박찬조 씨가 점방을 처음 시작했다. 말이 점방이지 만물상에 가까웠다. 고물, 연탄, 소금, 석유, 잡화, 철물 등 없는 거 빼고 다 팔았다.

과자가 귀하던 그 당시 가장 잘 나갔던 것은 1원에 2개를 살 수 있는 눈깔사탕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물고 있어야 했던 독사탕은 10개에 10원이었다. 할머니뿐 아니라 아이들도 독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하루 종일 오물오물 거리며 다녔다.

1960년대에 생긴 백운시장이 한창일 때는 돈궤가 그득찼다. 특별히 금고라는 것이 없던 시절 과자가 나무궤짝에 담겨져 왔다. 그 궤짝에 창호지를 바르고 구멍을 뚫어 돈궤로 사용하고는 했다.
처음 상호는 지금의 흰구름 할인마트가 아닌, 아버지 이름을 따서 찬조점방이라고 불렀다.
"그 때 뭐 제대로 간판 같은 거이 있나? 다 아는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애고 어른이고 전부 찬조점방이나 덕동점방이라고 불렀지."

찬조점방이라고 부르다가 지금 이 자리로 오면서 흰구름 할인마트의 이름은 시장의 변화과정과 함께 한다. 백운상회, 백운슈퍼, 백운마트, 그리고 지금의 흰구름 할인마트는 2007년 백운면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하면서 바뀌었다.

백운시장이 없어진 지 10여 년 정도 되었으니 강산 한 번 변한 시간인데 그만큼 사람도 줄어들고 대형마트에 밀려 장사도 안 된다.
예전에는 새벽 4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나 12시가 되어서야 겨우 문을 닫았지만 지금은 8시면 문을 닫는다. 곡성으로 낚시하러 가는 사람에게 낚시용품을 팔거나 술을 찾는 사람 정도가 전부이다.

"그래도 배운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 자리에서 죽어야지."
빨아먹어도 쉬이 닳지 않고 이빨이 아프도록 깨물어도 잘 깨지지 않았던 독사탕같이 찬조점방, 흰구름 할인마트가 백운면 점방거리를 계속 지키고 있기를 바래본다.

▲ 주머니에 10원짜리 동전 하나면 행복했던 그 시절, 흰구름 할인마트가 백운거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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