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73, 동향 학선리 을곡)

나는 아들 4형제와 딸 하나, 5남매를 두었는데 남편은 일찍 46살에 세상을 하직하고 자식들 대학을 공부시키는데 참 힘들었다.

자식들 용돈도 못주고, 옷 한 벌을 재대로 못 입이고, 운동화 한 껄레를 못 사신기고, 거지갔이 공부했다.
그래도 자식들이 잘 크고, 엄마한태 원망 안하고, 사고 안치고, 학교를 졸업하고 하나하나 직장도 잡고 결혼하고 사는데 3채 아들이 결혼을 못해서 걱정하다가 배트남으로 결혼을 시켰다.

돈을 2천만원을 드러서 결혼하고, 전주에다 조그만한 아파트에 살님을 할 수 있게 챙겨주고 잘 사라라 했더니, 이쁜 공주를 나서 키우고 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아기 낫고 8계월만에 아기를 대리고 친정에 가고 십다고 해서 아들이 '다녀오겠습니다'해서 '그래 잘 생각했다. 얼마나 가고 십겠냐' 나도 용돈을 주어서 보넸다.
배트남에 다녀오는데 돈이 8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럭게 다녀왔으면 잘 사라야지, 외 트직이를 뜻고, 계롭피고, 도망을 가고, 도망간 뒤에 집에가서 살펴보니까 농 서랍을 열어보니까 갓난니옷이 두 설압이 가듯차 있고, 지 옷이 농안에 잔득 걸어 놓고, 업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돈을 아끼지 안고 쓰면서 친정에 돈 주고 십으면 왜 못주어.

우리 큰 며느리는 여기 사람이라도 애들 옷 한 벌 안 사입이고, 친구들 한태서 어더서 입이고, 지 옷도 어더서 입고, 애들 먹고 십은 것도 안 사먹이고, 이럭게 사는데 왜 업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왜 그럴까.
그 어린아기 돌도 안 지냉걸 띠 놓고 도망을 갔다.

어린아기를 놀이방에 마끼고 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사는데 장년 7월27일날 회사에서 사고가 나서 화상을 입고 서울 병원에 중환자실에 있는데 누가 친구들이 열락을 했는지 병원에 차자왔다.
간호하고 살았으면 했는데 또 도망을 가 버렸다. 이럭게 못된것이 있을까? 배트남 사람은 인정도 업다. 아주 못된 행동을 하더란 말이지.

그래도 장년 11월 초에 온다고 해서, 저도 자식이 있으니까 나가서 고생도 했을 것이고, 내 마음에서 그래도 살면 십었다.
와서 한다는 말이 '시어머니 안보고, 동귀간들 안보고, 저만 보고 살면 산다'고 해서 우리 아들이 '나는 그럭게는 안 살아'하고 가라고 보네 버리고 혼자 살고 있다.
이럭게 싸가지 업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나하고 따로 살면서 손님갓치 다녀가는데 내가 저 한태 어트게 하겠어.

이것저것 먹을 것 챙겨주고 용돈도 주고 해서 보네면서 잘 사라하고 보내고 했다.
그리고 동귀간들이 일년이면 너됫번 만나고, 동서들도 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아무것도 시키지 안았다.
이럭게 싸가지 업는 것이 어디있냐.
누가 배트남으로 장가간다고 하면 내가 뱅도밥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릴 것이다.
사람이다 똑갔지는 안지만은, 배트남으로 장가가면 안데. 절대 가지마.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