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안병욱
·안 병 욱 씨
·주천면 신양리 상성암(윗미래) 출신 ·논산대건중(제7회) 동창회장
·11대 재경주천면 향우회장 역임(1991년)
·재경주천면향우회장(현재)

당(唐)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하고 한탄하였다지만 요즘이야 인생 칠십이 아니라 인생 백년쯤도 거뜬하게 지켜가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시대가 되어 간다. 의학의 발전이거나 여러 가지 현대문명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이제 어찌됐던 인생 칠십은 청년에 버금가는 그런 세월 속에서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안병욱씨의 인생 칠십년, 그것은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그는 허공에 흩어져 가는 담배 연기 속으로 그 칠십년을 쫓아가 본다. 그의 추억 속으로 흩어져 가는 파란만장한 지나간 이야기들이 주마등(走馬燈)으로 그의 뇌리에 스쳐간다.
안병욱 씨, 1940년 11월 10일생. 그의 인생이 칠십 고개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향 성암마을은 성치산 줄기에서 남쪽으로 뻗어 매봉 못 미쳐 서쪽에 자리 잡았다. 마을 앞으로 주자천이 흐르고 강당산이 안산이다. 마을이 돌과 바위로 형성되어 성암(星岩)이라 불리며 마을은 상성암(윗미래)과 하성암(바깥미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암마을은 그의 조상들이 150여 년 전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고 전하여 온다.
3남 4녀, 일곱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주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논산훈련소에서 직업군인(당시계급육군대위)으로 복무하던 형님을 따라서 논산대건중학교를 졸업한 뒤, 그 형님의 근무지 이동으로 다시 귀향하여 금산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배구특기생으로 발탁되어 대망의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한다. 1960년대는 3.15와 4.19와 5.16의 연쇄적 파장의 연속으로 정가(政街)와 학원과 군부등이 시대적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안병욱씨도 휴학원을 내고 군에 지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미뤄두고 있었던 학교를 마친다.

1969년에는 그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꿈 이었을 수도 있었던 「H.I.D배구팀 창설」에 초대 감독으로 참여하는 행운을 갖는다. 그리고 1971년 롯데제과에 취업하여 10년, 1981년 롯데제과지점 운영에 5년의 세월을 더 하여 역마를 닮은 것 같은 세월을 보냈다.

「산이 거기 있음으로 산에 오른다.」는 산악인들의 사전적 언어가 된 유명한 말을 남기고 초모랑마(영국명 에베레스트)에서 숨을 거둔 영국인 산악인「조지 말로리」를 닮은 것은 아니지만 안병욱씨는 요즘 에베레스트에 올라볼까 하는 산악인다운 꿈속에 있어본다. 산 정상에 올라 바다의 파도처럼 피어오르는 운무(雲霧)의 골짜기와 산봉우리들이 그의 시야에서 군무(群舞)할 때 잊고 있었던 인간의 행복을 즐긴다고 했다. 잊고 있었던 염불소리가, 어릴적 엄마의 손에 이끌려 찾아갔던 암자의 그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오던 그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염불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고 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벽계수는 깨달으라 이르고/고목은 참으라 이르네/
탐욕도 벗어놓고/성냄도 벗어놓고/
물 흘러 가드시/바람 스쳐 가드시/살다가 가라하네/

가끔씩 안병욱씨는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그것은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그는 얼굴을 붉힌다. 살아생전 다 하지 못한 자식의 도리를 그는 한(恨)한다고 했다. 그의 부친께서 그에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가훈과 함께 남겨주신 유훈(遺訓)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근천하무란사(一勤天下無亂事)/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늘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일생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번 참으면 집안에 언제나 큰 화평과 태평함이 온다.

우리의 고향사람 안병욱씨.
그의 향수의 순수성은 그의 초지일관 애향심에 담겨있었다. 그것은 다른 이에게 내 보이기 위한 애향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이기적 발상에 관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었다. 쓴 것이 다하면 단것이 온다는 진리를 그는 믿고 있었다.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는 믿음을 그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고향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열심히 그렇게 살았노라고 술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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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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