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김종서 씨
김 종 서 씨
안천면 신괴리 괴정마을 출신
안천중 24회동창회 부회장
초임지(初任地) 논산연무고등학교
이후 25년간 교직(敎職)에 종사
(현)서울영훈고등학교 국어교사

1982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선포된 사도헌장(師道憲章)-스승의 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 우리는 국민교육의 수임자로서 존경받는 스승이요, 신뢰받는 선도자임을 자각한다. 이에 긍지와 사명을 새로이 명심하고 스승의 길을 밝힌다.
우리는 제자를 사랑하고 개성을 존중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명랑한 학풍을 조성한다./우리는 폭넓은 교양과 부단한 연찬으로 교직의 전문성을 높여 국민의 사표가 된다./우리는 원대하고 치밀한 교육계획의 수립과 성실한 실천으로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한다./우리는 서로 협동하여 교육의 자주혁신과 교육자의 지위향상에 적극 노력한다./우리는 가정교육, 사회교육과의 유대를 강화하여 복지국가 건설에 공헌한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는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貪)하므로 환인(桓因)이 아래로 삼위태백(三危太伯)을 굽어보니「인간을 널리 유익하게(弘益人間)할 수 있었다.」하여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나라를 세우게 하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정부수립 이 후 홍익인간으로 교육법의 기본정신으로 하여 교육법 제1조에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18세기 스위스의 교육개혁가로 근대교육의 아버지라고 호칭되는 페스탈로치(1746-1827)의 묘비명의 기록을 더듬어 보자.

빈민을 구한 사람./고아들의 아버지./새로운 초등학교의 건설자./인류의 교사./참된 인간. 성실한 종교인. 훌륭한 시민!/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그의 이름에 축복 있으라.
그는 빈민교육을 주창했고 학생자신의 능력을 강화 시킬 수 있도록 교수법을 강조했다. 그의 방법론은 널리 인정받았으며 대부분의 교육원리는 현대 초등교육에 흡수 되었다.
오늘 여기 소개하려는 우리의 고향사람 김종서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1/4평생을 이 나라 차세대 교육에 바쳐온 선생님이다.

그는 1959년 섣달 초이튿날 아버지 김병기(78)씨와 어머니 정점순(74)여사의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 가 태어날 때쯤 그의 집안형편은 그 마을에서 형편이 훨씬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가난한 편도 아니었다고 그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또 다른 기억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께서는 장남인 그를 후일 처자식 고생시키지 않을 만큼은, 그가 반거청이가 되지 않을 만큼은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슴속 깊은 곳에 혼자서만 새기고 있었던 것 같다고 술회한다. 그러한 아버지를 따라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고향에서 안천초등학교와 안천중학교, 그리고 안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성균관대학 국어교육학 석사과정도 이수하였다. 충남 논산의 연무고등학교를 초임지로 하여 25년간 사도(師道)의 행진은 현재 서울 영훈고등학교 국어선생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사도(師道)엔 직급(職級)이 없다고 강조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교육은 모든 발전의 근원이다. 미숙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그것은 끝이 없는 인간의 작업이다.」
교육이란 진리를 배우고 깨닫게 하는 것이란다. 진리를 배우고 깨닫는 것은 결국은 인간의 행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단다.
그는 가끔씩 산에 오른다. 산은 인간들에게 도전을 유발한다. 그 조그마한 순간의 만족을 위하여 정상을 정복하는 사람들은 그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산으로 부터의 또 다른 도전을 받게 된다. 그것은 내려가는 길의 허망함이다. 힘겹게 걸어 걸어서 찾아간 정상의 환희와 인간적 허무함, 그것에 관한 의미의 간격을 한참씩 음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고향 안천면은 1914년, 일제의 통합 령에 따라서 용담 군이 폐지되고 진안군으로 통합되면서 삼천서원의 안자동과 안자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안천은 집성촌이 많아 조상과 가문의 긍지를 중시하였고 서원과 향교를 출입하면서 학문을 숭상하고 경로효친과 후진교육을 진흥시키는 안천 특유의 문화를 이루어 오고 있단다.
용담댐의 수몰에서 고향집이 제외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그 고향집 이야기에는 김종서씨의 표정이 어둡다.
고령으로 고향에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의 걱정 때문이다. 부모님들이야 괜찮으니 염려 말라 그러 하시지만 그의 마음이 그렇지가 못하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 했다던가?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형국이다.
효도를 하려고 뒤척여 봐도 그 길이 멀더란다. 잠을 못 이루는 나날들이 너무나 많으니 이제 철이 드나보다고 슬프게 웃는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종서씨.
그는 그의 사랑하는 두 아이에게 전해 줄 가훈을 이렇게 전한다.
자효쌍친락(子孝雙親樂)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주나라 강태공의 말씀이다.
「자식이 효성을 다하니 부모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 이루어지느니라.」  

연락처 : 010-6396-7392

/서울취재본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