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유양수 진안군민연대

요즈음 일본이 관측사상 유래가 없는 엄청난 지진과 해일의 타격을 입고, 설상가상으로 핵발전소까지 위험에 놓이게 되는 등 계속되는 참담한 재난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엄청난 해일이 도시와 농촌 구별 없이 휩쓸어가는 무서운 장면과 폐허로 변한 삶의 터전주변을 가족의 생사를 몰라 헤매거나 대피소에서의 어려운 생활 광경을 뉴스 화면으로 지켜보자니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 어떠한 형태이든 재난이라는 것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니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음이다.

며칠 전 읽은 서울대 모 교수의 관련 글 중에 동감하는 부분이 있어 인용하면서 필자의 생각을 더 하고자 한다. 목민관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와 행정의 실무지침이라 할 수 있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일상적인 조건 아래에서 행정의 문제들에 대한 지침뿐만 아니고 재난을 당한 비상사태에서 백성 구제 대책을 지침 한 '진황'(賑荒)편이 있다. '진황'편에는 6조목의 구제 방책을 명시하고 있는데, 첫째 조목 '비자'(備資)는 재난에 대비하여 미리 물자를 비축해야 한다는 것으로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미리 대비해 놓는다면 하늘에서 내리는 재난일지라도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도록 하는 대비책이다.

나머지 다섯 조목 勸分, 規模, 設施, 補力, 竣事은 재난을 당한 다음에 시행할 구제 대책을 제시한 것으로. 이 다섯 조목의 첫머리에 '권분'(勸分)을 들고 있는데 재난을 당했을 때 서로 나누어 쓰기를 권장하는 의미로 구제책의 처음에 명시 하였다. 우리에게는 옛 부터 재난을 당하거나 사사로운 길흉 간에도 이웃이 모두 나서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양속이 있듯이, 큰 재난에도 서로 의지하며 나누어 돕는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역시나 이웃 일본의 어려움에 우리의 권분(勸分) 정신은 또다시 발휘되어 우리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일본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필자가 어렸을 때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어데서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일본은 언젠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는 말을 하면서 당시의 일본에 대한 감정대로 고소해 했던 기억이 있는데 현실로 이루어 지는듯한 이웃의 재앙은 결코 즐겁지 않다. 국권 침탈로 36년간의 식민지배와 그 이후에도 얼마나 우리의 국민감정을 건드렸는가...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의 참혹한 재앙에 대하여 묵은 감정을 접어두고 열린 도량의 따뜻한 정서의 한민족(韓民族)답게 권분(勸分)을 시행하고 있음에 자긍심을 느끼며 매일 매일 커지는 엄청난 모금액을 보면서 우리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의 척도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년 몇 번씩 행해지는 국내외 재난에 대한 구호성금 모금을 보면서 재난을 당해서 나누어 쓰기를 권유한다는 것은 스스로 '베풀기'를 권유하는 것이지만 억지로 내놓게 하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칫 '바치게 하는 것' 으로, 그러해서도 안 되며 너무 과열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어쩌다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그 자체가 극심한 재난의 수준에 놓여 있는 이웃이 많이 있다. 가까이는 북한 동포의 굶주림이 그러하고, 멀리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전과 빈곤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사실은 우리나라 안에도 빈곤과 질병에 고통 받는 이웃이 얼마든지 있다. 거리의 걸인이나 노숙자들에게는 냉정하리만치 무심하다가 이웃나라의 재난을 돕는 데 너무 요란하게 나서는 것도 모양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으로 조금은 절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음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렇듯 가까운 이웃으로서 지나치다고 생각될 만큼 도리를 다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최근의 뉴스에 일본은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인데 한국이 점유하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또 다시 기술해서 출간하고 외교청서에도 기록하여 국제적인 분쟁으로 부각시키며 일부 극우파들은 개인의 본적을 독도 즉 그네들 명칭으로 죽도로 옮기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물론 재난 구호와 독도 문제는 별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정서를 알 수 없으며 언제까지 이웃 간에 반목꺼리를 만들고 우리 국민의 정서를 건드릴 심사인지 실로 의심스럽다.
향후 대북관계 등 우리의 생존 문제에 있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세에서 그들의 정서대로 도의나 신의를 버리고 실리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을 줄지도 모를 일이며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있음이 아닌가 싶다.

재앙의 혼란 속에서 일본국민들이 보여준 질서의식과 의연히 견디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경계심이 느껴짐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애증의 이웃이지만 고통 받는 일반 이재민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재앙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 세계 속에 동북아의 동반자로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이웃으로 하루 빨리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도 조금은 자제와 절제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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