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아래 첫 마을…주민 단합 ‘으뜸’

 

장류산업으로 새로운 도약 꿈꾸는 진안읍 사양동

이전의 농업·농촌정책은 중앙정부에서 시달하는 내용을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이른바 하향식 정책이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중앙정부 주도의, 설계주의 농정은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많은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농업·농촌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처럼 외생적 지역발전에 대한 한계를 실감하고 내생적 지역발전에 대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군에서는 2001년도에 시·군단위로는 전국 최초로 지자체의 독자적인 지역개발사업으로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을 실시했다.

단기적으로는 지역특성을 살린 소득작목 개발과 관광기반 및 도농교류기반 구축으로 주민 소득향상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자연·문화·역사적 특징을 살린 마을로 개발하여 지속적인 지역공동체로서의 마을조성이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의 목적이다.

햇수로 5년.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이 우리의 농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마을 사업에 주민들이 얼마큼 주체적으로 참여해 주민조직이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화려한 코스모스 꽃밭이 들어서기 전에는 온통 누런 황금빛 들녘이었을 것이다.

진안읍 사양리 마을에서 ‘가을 들판’이라는 풍요롭고, 넉넉한 표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논과 밭은 개발논리에 밀려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북부예술관광단지의 틀 속에 묶여버렸다.

수확의 풍성함을 느껴야 할 가을, 진안읍 사양리 마을에 들어서며 떠오른 생각이다.

마을 앞 광장 한 구석을 채운 볍씨들과 들깨 다발들이 아직까지 사양동에 남아있는 농촌마을 풍경이다.

◆마이산 아래 ‘첫 마을’

사양동은 마이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이산 아래 첫 마을이다. 진안읍에서 마이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위치한 사양동은 진안읍쪽에서 볼 때 해가 지는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사양동’이라 이름 붙여졌다.

내사양과 외사양을 합쳐 85가구에 229명이 모여 사는 사양동은 포도와 고추, 머루, 인삼, 쌀 등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대부분의 농지가 관광단지로 수용되면서 농업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마이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지역적 특징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을 기대해 마을에는 10개의 민박집이 위치해 있지만 관광객 유치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마이산 도립공원, 은수사, 탑사, 마이산랜드, 사양저수지, 향토역사박물관 등 많은 관광자원에도 불구하고 마을주민들은 관광객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옛날, 옛날에는…

다른 여느 마을처럼 사양마을에도 마을의 공동의식을 담은 많은 행사들이 행해졌다.

내사양 뒷산에서 지냈던 당산제(산신제)와 사양저수지에서 지냈던 용왕제, 그리고 마을입구의 조그만 다리에서 지냈던 다리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음력 정월달에 지내는 다리제는 비명에 간 귀신들의 제를 지냄으로써 사양마을을 지나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또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행사다.

사양저수지에서 열리는 용왕제 또한 과거 저수지에 빠져 죽는 주민들이 많아지자 주민들은 음력 정월달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게 됐다는 것이 마을 추진위원장인 강남호(68)씨의 얘기다.

용왕제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한 가운데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돼지머리를 묶어 물속에 넣어두었더니 배고픔을 참지 못한 주민이 저녁을 틈타 꺼내 먹었다가 변상을 하고 다시 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많은 마을의 공동체의식 가운데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의식들도 많다.

마을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산신제)와 성황당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옛날에는 내사양마을 뒷산에 호랑이가 있었어. 당산제를 하려면 산속에서 날을 새야 하는데 신기(神氣)가 없는 사람들은 하지도 못했지. 하지만 지금은 호랑이도 없어졌지만 당산제를 지낼 어르신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어. 제를 지낼 사람이 이젠 없지.”

강남호 위원장이 밝힌 사양마을 당산제가 사라진 이유다.

내사양마을의 당산제와 함께 외사양마을의 성황당도 마을에서 사라졌다.

“마을 길 한 가운데에 작은 소나무가 있었고 그 곳을 지날 때면 사람들은 돌을 하나씩 던져 놓고 갔어요. 동네 친구네 집을 놀러 갈 때도 그곳을 지날 때면 항상 던지던 기억이 있죠. 하지만 어느날인가 소나무 아래 성황당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더라구요. 풍성하게 쌓여있던 돌들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주민들의 많은 추억을 담아냈던 많은 공간들이 주민들의 얘기처럼 그야말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으뜸마을을 이끄는 자원들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이 잘되는 마을, 젊고 의욕적인 지도자가 있는 마을, 도시와 교류를 잘 하는 마을, 주민단합이 잘되는 마을, 독자적인 유통망을 갖고 있는 마을]

사양마을이 으뜸마을가꾸기 대상마을이 된 이유들이다.

주변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노인회나 부녀회의 조직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이 사양동이 갖는 최대 강점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단합된 힘은 군에에 가장 큰 달집을 만들어냈다.

매년 정월대보름, 마을 앞 공터에는 군에서 가장 큰 달집이 만들어진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5, 6대의 경운기를 이용해 하루 종일 모아온 나무들은 고추시장에서 만들어지는 달집보다 더 크고 의미있는 달집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박덕만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밖에 마을 근처에 나들목 건설과 함께 실버타운설립 계획도 마을의 기회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사양마을의 가장 큰 자원은 바로 ‘주민’ 자신이다.

우수 농업인으로는 고석환(고추), 김봉덕(산머루), 강남호(포도, 복숭아), 고석귀(벼), 박동욱(벼), 최명춘(사슴), 양봉선(배추)씨가 있고, 무형의 자원으로는 김해순씨의 옛날 노래와 농악 및 꽹과리의 양봉선씨, 그리고 마이산의 유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두식씨도 마을의 큰 자랑이다.

또한 올해 92세의 김구만씨와 91세의 김홍이씨, 89세의 오차남씨 등은 아직도 건강을 유지하며 실버타운건립계획과 맞물려 사양마을을 장수마을로 이끌고 있다.

여기에 사양지구 으뜸마을을 이끄는 박덕만(50) 위원장과 간사로 활동하는 강동환(29)씨가 행정과 주민을 연결하며 마을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새로운 소득창출의 꿈

지난해 사양동에는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마을회관 2층에 주민들의 새로운 소득을 꿈 꿀 새로운 공간을 건설했다.

바로 방아시설이다.

“마을공동사업으로 지난해 말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장류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방아를 찧기 위한 시설은 거의 들어왔고, 이제는 전기시설 설치 등만이 남아있는 상태죠. 방앗간이 운영되면 우선 마을주민들의 가계지출을 줄일 수 있고, 또 마을주민 전체의 소득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덕만 위원장이 장류산업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 이유는 바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마을 내 주민들의 역량 때문이다.

현재 7농가가 콩 재배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그 외에 다른 주민들도 친환경농산물 생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앞으로 장류산업은 사양마을이 내세우는 가장 큰 소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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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마을 지킴이 박덕만 위원장

지속적인 사업추진 필요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을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공동체적 사고와 단합은 전보다 크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이 시행된 지 4년.

진안읍 사양지구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을 이끌고 있는 박덕만 위원장이 내 놓은 성과다.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취합해 나갈 것인가 많이 고민했지만 어려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주민들 스스로 의견을 모아나갔다.

“처음 회의를 할 때였어요. 한 마디로 중구난방이었죠. 동으로 갈 것이냐 서로 갈 것이냐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함께 모여 상의하다보니 마지막에는 의견일치를 보이더라구요.”

마을발전을 위한 공동체적 사고의 향상이 바로 으뜸마을 가꾸기  업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이 박 위원장의 얘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우려도 깊다.

“군이 제시한 으뜸마을 가꾸기사업의 취지는 바로 선택과 집중이었지요. 그래서 진안읍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마을이 선정돼 앞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개인지원이 아닌 공동지원으로 사업이 이루어지다보니 4년이 지난 지금 편의시설 등은 마련됐지만 가시적인 주민소득은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마을 간사제도를 비롯해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이 마을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군의 지속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새마을사업과 같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동원하기 힘들어졌고, 이제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발전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변화된 시대의 흐름 속에 사양동의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이 마을주민들에게 공동체적 사고를 심어주었다면 앞으로는 군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아래 어떻게 하면 지역의 소득을 높일 수 있을지 주민과 함께 고민해 나가겠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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