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물에 담긴 가을 속으로 빠지다
붉은 물에 담긴 가을 속으로 빠지다
  • 임연희기자
  • 승인 2006.11.03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안읍 은천마을 나도산

얼마 전까지 만해도 산과 들은 푸르른 녹음으로 청명하기만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연은 언제 푸르렀나 싶게 붉은 가을 빛을 토해낸다. 가을풍경이 주는 운치가 갈수록 더해가는 10월 28일. 쌀쌀한 미풍이 살갗을 서늘하게 만들지만 구름한 점 없는 맑은 가을하늘과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을 느끼며 그렇게 ‘두발로 선 진안’ 첫 산행을 시작했다.

진안읍 은천리 마을 뒤로 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우리지역의 잊혀진 산과 고개를 찾아 추억을 되새겨 보고자 기획된 산행의 첫 목적지는 마이산 주변 탐방이다. 그래서 찾은 나도산. 마이산의 줄기하나가 은천마을로 약간 목을 내민 기슭에 이르렀다. 등산로 안내판이 먼저 반긴다. ‘아! 이제 시작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행들을 따라 가을도 함께 따라온다. 미처 붉은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나무들 주위는 온통 붉은 물결 뿐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푹신함이 재미있다.

 

 

◆길 따라 걷다

처음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산행에 함께 동참한 일행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등산로 이곳저곳엔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았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이름 모를 야생화도 다소곳이 피었다. 자동차가 없던 옛날, 이 길을 넘었을 사람들은 아들하나 점지해 달라고 마이산으로 치성을 드리러 정성을 담아 한발 한발 걸어갔을 터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갑자기 공간이 환해진다. 머물러 있던 바람이 우리 일행에게 인사하며 시원하게 스친다. 저 멀리 무주 덕유산 능선까지 눈에 들어온다.

힘차게 오르지만 어느새 힘이 빠질 때쯤 나타난 공간. 잠시 쉬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가을과의 대화 속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는 일행들 뒤로 자꾸만 가을이 따라온다. 미처 붉은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나무들 주위는 온통 붉은 물결뿐이다. 한 없이 이어질 것 만 같은 오르막을 뒤로하고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 오랜 세월 이 길을 지나왔던 그들의 발자취로 자연스럽게 생성된 길이다.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이제부터 가을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바스락 바스락’

산길에 떨어진 낙엽 밟히는 소리가 즐겁다.

‘푹신 푹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푹신함이 재미있다.

눈에 보이는 모습대로, 손끝에 스치는 느낌대로, 산과 가을을 마음에 담는다. 어느새 1시간이 지나고 일행은 나도산에 올랐다.

 

 

진안읍 가림리 은천마을에서 시작하는 산행이 산중턱에 머물렀다. 야트막한 산등성이 뒤로 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나도 마이산

한 걸음만 내딛으면 마이산에 오를 것 같다. 저 멀리 진안읍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여름 흐드러지게 피었을 벚꽃가로수 길을 지나 탑영제도 보인다. 바로 앞에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있다. 암바이봉의 타포닌 현상과 숫마이봉의 코리리상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와 시선을 잡아끈다. 정오에 비치는 태양 빛이 두개의 봉 사이로 자리를 잡는다.

산 정상엔 작은 돌탑이 놓여있다. 돌 하나 놓고 마음 속 소원 빌었을 그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듯 하다. 바로 앞에 둔 마이산을 닮아 돌산의 모습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산은 산이되 나도 마이산이란다.

 

◆은수사를 돌아 나오다

‘둥 둥’

관광객들이 내려치는 북소리가 유난히 크다. 소리 따라 은수사로 가는 길엔 오래된 나무가 즐비하다. 마이산신제단을 지나 내려오니 여기저기 관광객들로 분주하기만 하다. 누구든 3번 두드리며 자기 마음을 깨워 보라는 법고 앞에도,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청실배나무 앞에도... 청실배나무 앞에는 물이 담긴 스탠그릇이 놓여있다. 역고드름때문이라고 하니 사진으로만 보았지 직접 보지 못했으니 올 겨울 다시 한번 오자고 생각해 본다.

반환점인 은수사를 돌아 나도산을 오른쪽으로 하여 계곡을 올랐다. 인적이 드물어 희미해진 길을 찾기가 힘겹다. 짧은 오르막이지만 잠시 휴식을 맛본 다리는 쉬 걸음을 빨리 하지 못한다. 그래도 두 발은 산을 내려왔다. 마냥 힘들 것 만 같은 산행이 내려오는 길엔 아쉽기만 하다. 두런두런 일행들 사이로 퍼지는 웃음과, 노래 꽃이 오늘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여유로움을 한가득 품어 가는 듯 하다.

 

 

 

 

 

 

 

 

 

 

 

 

 

 

 

 

 

 

 

 

 

 

이제는 잊혀져가는 옛 길이다. 아직 남아있는 좁다란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일행들은 등산로 주변에 표시리본을 맺다.

 

 

◆흙냄새에 묻힌 마을

오전에 올랐던 등산로 입구를 오후가 되어서 다시 밟았다. 산을 오를 때 보지 못한 마을의 모습이 새삼 다가온다. 텃밭엔 농부가 가꾼 농작물이 싱그럽다. 농촌이지만 여느 대도시 못지않은 집들과는 다른 흙 담벼락이 마냥 정겹다. 이 마을 앞 도로는 진안-마령-백운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이다. 그래서 이 마을은 예전 백운, 임실방면에서 마이산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털털털 경운기 소리와 소 막의 거름냄새가 옛 시골풍경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가을에 흠뻑 젖은 산이 품고 있는 마을의 모습은 말 그대로의 예술이 된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정을 모두 마친 일행은 창작예술스튜디오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밑에서 시원한 캔 맥주 한 잔에 피로를 씻었다. 이곳도 가을이 찾아왔나 보다. 운동장 한켠에 심어진 하얀 구절초 향기가 퍼지고, 가벼운 바람에도 은행잎은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다시 찾아보자 시작된 산행. 다음에 만나는 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줄지 내심 기대를 가져본다.

 

 

나도산에 올라 바라 본 수마이봉의 코끼리상이 더욱 선명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