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행복을 위해, 배우자”
“내일의 행복을 위해, 배우자”
  • 류영우기자
  • 승인 2006.11.16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은빛·어울림 백일장 대회


할머니들이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머나 먼 이국땅에서 남모를 눈물을 흘려야 했던 외국인주부들도 함께 웃었습니다.

딸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됐고,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할머니들에게는 한이 됐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는 부끄러워서 내색도 못했던 그 망할 놈(?)의 한글을 배우고 보니 속이 후련한 가 봅니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성들을 끄집어내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처음 글을 배우고 쓴 글들이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할머니들이 살아온 인생을 꿰뚫습니다.

지난 15일 열린 은빛·어울림 백일장 대회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밭이랑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듯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할머니들의 눈빛이 진지합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이를 안고 온 외국인 주부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멋진 한글 솜씨를 뽐내 봅니다. 엄마의 글 솜씨가 부러웠는지, 아이의 손에는 작은 연필이 쥐어졌습니다.

 

11개 읍면 은빛문예반 학생들이 참가한 은빛백일장 대회에서는 동향면의 권순애 할머니가 최고상인 세종대왕 상을 받았습니다.

권순애 할머니는 “남편이 객지에 있을 적에 편지 올 때 답장 못해줘 제일로 괴로웠다”며 “남편이 돌아와서 왜 편지 안했느냐고 따지는데 챙피해서 글 모른다는 소리는 못하고 거짓말로 부산에 갔다 왔다”고 말했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촌생활, 출근 시간도 없고 퇴근시간도 없는 농촌생활이 힘들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글을 몰라 서러웠던 그 옛 날을 다 잊어버리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글을 배우겠다”는 다짐도 적어 두었습니다.

 

외국인한글반 글짓기 대회에서는 진안읍 단양리의 에니다 엘로씨가 1등을 했습니다.

엘로씨의 글에는 가족, 특히 남편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겼습니다.

한국에 온지 6년, 엘로씨는 아이들과 남편이 있어 지금 무척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여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살면서 느끼곤 한답니다.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이 처음이나 지금처럼 이어지기를 믿습니다.”

 

광조, 광훈, 광덕 그리고 남편. 엘로씨는 다섯식구가 지금처럼 서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열심히 한글을 배워 남편과 자식들에게 무능한 엄마, 그리고 무능한 아내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의 글도 적어 놓았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글에, 심사위원들은 극찬을 쏟아냈습니다.

“권순애 할머니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배우자는 내용을 감동적으로 표현했고, 한태옥 할머니와 김남예 할머니는 글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글로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또 이이순 할머니와 오기남 할머니는 글씨를 아주 이쁘게 쓰셨습니다.”

“좋은 글이란 자기의 생각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것인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르신들의 글 속에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정리, 좋은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다고 평가하기 힘들지만 은빛 문해반에서는 동향면의 권순애 할머니가 세종대왕상을 받았고, 진안읍의 한태옥 할머니와 성수면의 김남예 할머니가 버금상을, 마령면의 이이순 할머니와 진안읍의 오기님 할머니는 이쁜 글씨상을 받았습니다.

또 외국인 한글반에서는 진안읍의 엘로씨가 세종대왕상을, 안천면 미르나씨와 주천면의 카한도씨가 버금상, 동향면의 베너시아씨와 부귀면의 치도리씨는 이쁜 글씨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이날 행사장에 모인 30여명의 할머니, 외국인 주부들은 정말 뜻 깊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