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연 평생학습 요가강사

필자가 진안 땅과 처음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함께 일했던 선배가 특강을 하러 이곳에 오면서 필자를 불러들였다. 육십령 고개를 넘어 장수를 거쳐, 말로만 듣던 ‘무진장’중의 하나인 진안에 들어오는 길. 참 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찾은 곳은 ‘진안 문화의 집’. 몇몇 지인들이 문화의 집과 관련된 일을 보고 있던 터라 이와 관련된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한 필자에게 ‘진안 문화의 집’은 좀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전라도에서도 오지, 깊은 시골에 있는 문화의 집이라... 뭐 건물 있고, 프로그램 몇 개 돌리고 있겠지 하던 필자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듯, 진안 문화의 집은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늦은 오후시간, 아이들은 북적였고, 그 아이들이 공간을 익숙하게 이용했으며, 책이며 영상물 같은 자료들 또한 잘 활용되고 있는 모습에 필자는 적잖이 놀랐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곳은 상당히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제법 있었다. 그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시골은 정체되어있고 변화가 없는 곳이라는 필자의 선입관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처음 찾았던 진안 땅이 지금은 필자의 삶터와 일터가 되었다. 

 

요가강사로서 진안군 평생학습 가족이 되었다. 그 인연으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르신에서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연고 없이 들어온 이방인 치고는 잘 받아들여진 셈이다. 하얀 머리에 커다란 돗보기를 쓰고 열심히 글을 읽고 쓰시던 할머니, 아픈 몸을 이끌고도 빼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시는 요가 회원들, 검은 피부에 간난쟁이 아이를 업고서 환하게 웃던 이주여성들, 요가 하면서 옆구리 아프다며 엄살부리던 아이들... 모두다 평생학습의 울타리 안에서 만난 이들이다. 관심분야도 능력도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용광로처럼 평생학습은 그들 모두를 하나로 모았다.

며칠 전, 문화의 집 2층에서 평생학습 전체 프로그램의 발표회가 있었다. 한껏 모양을 낸 어르신들이 옷을 갖춰 입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고, 이주여성들은 유창한 한국말과 화려한 춤을 선보였다. 그동안 수련했던 요가도 한 자리 차지해 발표를 마친 후 많은 박수를 받을 때는 강사로서 보람도 컸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로 초월한 그곳은 신명난 잔칫집이었다.

 

군에서는 아예 평생학습 전담 부서를 신설하였다. 평생학습의 영역을 넓히고자 각 면단위에 평생학습사도 있다. 읍뿐 아니라 면과 리 단위까지 프로그램을 확대하려면 많은 아이디어와 발품이 들어가는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들은 희망차다.

사실, 평생학습은 주민문화복지 사업이다. 먹고 살기 힘들 때는 문화니 복지니 하는 말들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문화와 복지 없이는 살기가 힘들어졌다.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평생학습을 통해 주민들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고, 또 깨어나 자기 개발을 해나간다면 그들은 이곳 진안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사람이 희망이기 때문에, 사람이 희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키우는 것이 바로 희망을 만드는 일이다. 평생학습이야말로 사람을 키워 희망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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